
서른셋의 5.18, 사진의 기억과 상상력에 관하여 묻다
올해로 5. 18민중항쟁이 33주년을 맞는다. 33이라는 숫자는 대부분의 종교에서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영생과 불멸, 도처의 모든 사람. 이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담고 있다. 고은사진미술관은 바로 이 33이라는 상징적인 숫자에 주목하면서 광주민주항쟁이라는 현대사의 큰 쟁점을 사진이 어떻게 기억하는가를 추적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전시는 1980년이라는 시간과 전라남도 광주라는 공간이 ‘그때 그곳’에 멈춘 박제된 기억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삶의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조명하여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며, 관련사진을 집합하여 나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1980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5. 18이라는 묵직한 사건을 사진은 어떻게 목격했고, 기억해 왔으며, 재현해 왔는가라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날의 훌라송>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전시라기보다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사진적 방법론에 관한 전시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이러한 의도에 맞춰 전시는 포토저널리즘사진에서부터 현대사진까지를 모두 아우르면서 사진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장대한 질문에까지 접근한다. 그 동안 5. 18에 관한 많은 사진전이 있었지만,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재현과 사진적 상상력에 관한 접근은 처음인 만큼 고은사진미술관이 전시에 거는 기대도 남다르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고은사진미술관과 고은 컨템포러리 사진미술관 두 곳에서 총 11명의 작가들의 작품과 시민들이 제공한 기념사진으로 보다 역동적으로 구성된다.
전시 제목인 <그날의 훌라송>은 당시 광주에서 가장 많이 들리던 노래, 훌라송에서 착안했다. ‘손뼉 치며 빙빙 돌아라’란 동요로도 알려진 이 곡조는 5. 18 당시 시위대가 “무릎 꿇고 사는 것보다 서서 죽기를 원하노라 훌라훌라”, “유신 철폐 훌라훌라” 등 시위 현장에서 상황에 맞는 가사를 붙여 주로 사용하던 상징적인 노래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이 곡은 계엄사가 광주와 전남지역에서 선무방송宣撫放送을 할 때마다 배경 음악으로 썼던 군가이기도 하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이 사기 진작을 위해 부르던 <When Johnny comes marching home>이라는 곡이 원곡으로 그 뒤로 대표적인 군가로 자리잡아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다. 그러나 이 곡의 진짜 뿌리는 전쟁에 동원된 뒤 다리를 잃고 돌아온 남편을 원망하는 내용을 담은 <Johnny I hardly knew ye>라는 아일랜드의 반전 노래다. <그날의 훌라송>은 전쟁을 원망하는 노래가 승전가로 바뀌는 현실의 부조리함, 서로의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등장하는 엇갈린 역사를 풍자함과 동시에 그날의 사건을 각자 자기방식으로 기억하고 짜깁기하는 오늘날의 현실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제2 전시장인 고은 컨템포러리 사진미술관에서는 5. 18을 작가적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오형근의 <광주 이야기>는 영화 <꽃잎>의 촬영 현장에서 포착된 진짜와 가짜에 관해서 말한다. 영화배우와 엑스트라를 자청한 단역 시민, 그리고 구경꾼인 진짜 시민들이 사진 한 장 속에 중첩되어 미묘한 시선의 차이를 드러내거나 혹은 그 어떤 차이도 담아내지 못한 채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묻는다.
강홍구는 다른 작가의 사진이나 이미 찍혀진 사진 위에 또 다른 이미지를 덧입혀 새로운 시각적 층위를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오형근의 작업이나 김녕만의 보도 사진에 절규하는 자신의 모습이나 연꽃 등을 합성하여 1차 사진에서 본인이 느낀 감정을 드러내는 식으로 말이다.
그 밖에 기억의 매체인 사진을 통해 역사적 망각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노순택의 <망각기계>, 희생자의 어머니들과 사건 현장을 직접 찾아가 그 장소에서 그들의 초상사진을 찍으면서 기억과 인물, 장소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김은주의 <오월어머니>, 상무대가 이전되고 아파트가 들어서는 풍경을 통해 5. 18을 기념하는 방식에 대해 묻고 있는 김혜선의 작업과 기억의 틀로서 사진에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부여하는 오석근의 <비난수 하는 밤>이 같이 소개된다. 이들의 작업은 사진이 어디까지를 재현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면서 역사적 사건을 낯선 풍경을 통해 비틀고 있다.
최근 기억의 문제는 역사학에서부터 정신분석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제적 논의를 이끌어내고 있는 중요한 화두이다. 특히 역사적 사건과 그에 대한 트라우마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으며 그 속에서 개인의 삶은 어떤 변화를 겪어왔는지를 추적하는 것은, 5. 18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 취지에 공감해 사학자 전진성은 트라우마와 문화적 기억의 문제를, 국문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천정환은 5. 18이 1980년 이후 우리 삶에 개입해온 방식을, 사진평론가 이영준은 등사기의 ‘찌라시’에서부터 화이트큐브의 작품이 되기까지 5. 18에 관련한 사진적 태도의 변화를 추적하는 필진으로 참여한다. 전시는 <삶을 기억하라>, <실락원>, <마리오쟈코멜리>전 등을 기획했던 송수정이 맡았다.
ⓒ김은주, 오월 어머니, 망월동 묘역 1-1(묘지번호) 임근단,Archival Pigment Print, 120 x 120cm, 2011
ⓒ노순택, 망각기계 ||, #02, Archival Pigment Print, 50x70cm, 2009
ⓒ오형근, 광주 이야기, Piate no 35, 태극기를 흔드는 4명의 배우들, 1995년 9월 28일, Archival Ink-jet Print, 26 x 26cm, 1995
ⓒ오석근, 비난수 하는 밤, 행불자 1, Digital C-Print, 가변크기, 2013
작가프로필
강홍구 HongGoo Kang ![]() 김은주 EunJu Kim ![]() 김혜선 HaeSun Kim ![]() 노순택 SunTag Noh ![]() 오석근 SukKuhn Oh ![]() 오형근 HeinKuhn Oh 참여필진 ![]() 참여필진 ![]() 전진성 JinSung Chun ![]() 천정환 JungHwan Cheon ![]() 전시기획 송수정 SuJong So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