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사진미술관 기획전

사람의 그때

강운구

2021-09-11 - 2021-12-26

ⓒ 강운구, 박경리 (서울 정릉, 1976)
ⓒ 강운구, 박경리 (서울 정릉, 1976)


인사말


강운구 사진의 결산에 붙여서


고은사진미술관은 사진가 강운구 선생의 《사람의 그때》전을 개최합니다.                                                                          

사진의 기록적 가치와 예술적 의미를 가장 솔직한 사진창작으로 변함없이 펼쳐오고 계신, 강운구 선생의 작품 전시를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사진은 시공간 예술이다’는 사진 속 그 시간, 그 장소에 사진가가 존재하였음을 의미하며, 특히 인물사진은 사진가가 사진 작품 속에 등장하는 피사체, 인물과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본 전시 《사람의 그때》는 지난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진가 강운구 선생이 만난 인연의 발자취를 지속적으로 기록한 사진 작업인데, 160명 문인들과 화가들의 인물사진 163점이 전시됩니다.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인물사진은 외형의 기록에 충실한 이미지로 완성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자기자신과 서로의 모습에 특히 관심이 많은 우리는 평범한 인물사진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즉, 피사체인 사람의 존재와 의미의 가치가 함께 표현된 강운구 선생의 초상사진에 주목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덮고 있는 사진은 겨우 182년 전에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얼굴-초상사진을 찍으려고 발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상을, 사람을 찍는 것이 사진의 가장 기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남는 것은 사람 사진 뿐일 것입니다. 

강운구 선생의 초상사진은 평범한 것 같지만 독창적인 아우라(AURA)가 느껴집니다. 촬영 현실에 순응하고 찍고자 하는 대상을 존중하며 진솔하게 찍은 인물사진입니다. 그리고 피사체와 긴밀히 소통하며 인식한, 인간적인 감성을 담백하게 기록한 사진적 시각이 일관성 있게 다가옵니다. 사진가로서의 욕심과 연출을 절제하며 촬영할 인물의 느낌 그대로, 그 사람답게 찍는, 늘 한결같은 50년이 넘도록 일관성을 유지한 관점이 강운구 선생의 사진론이라고 확신합니다. 특히 사진의 지시적 기능과 사진의 추상적 가치 탐구를 통해 발현된 그의 작품들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사람의 그때》 전시를 통해 현실의 충실한 재현과 진실이 공존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의미를 함께 공감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강운구 사진’의 결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은사진미술관이 준비한 강운구 선생의 《사람의 그때》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여러분의 지속적인 성원과 관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재구

고은사진미술관 관장

  • ⓒ 강운구, 박경리 (서울 정릉, 1976)

    ⓒ 강운구, 박경리 (서울 정릉, 1976)

  • ⓒ 강운구, 장욱진 (충북 수안보,1983)

    ⓒ 강운구, 장욱진 (충북 수안보,1983)

  • ⓒ 강운구, 김기창 (충북 청주, 1984)

    ⓒ 강운구, 김기창 (충북 청주, 1984)

  • ⓒ 강운구, 박고석 (서울 원남동, 1974)

    ⓒ 강운구, 박고석 (서울 원남동, 1974)

  • ⓒ 강운구, 임응식 (서울 종로, 1973)

    ⓒ 강운구, 임응식 (서울 종로, 1973)

  • ⓒ 강운구, 최일남 (서울 종로, 1975)

    ⓒ 강운구, 최일남 (서울 종로, 1975)

  • ⓒ 강운구, 한창기 (충북 충주, 1996)

    ⓒ 강운구, 한창기 (충북 충주, 1996)

  • ⓒ 강운구, 함석헌 (서울 마포, 1968)

    ⓒ 강운구, 함석헌 (서울 마포, 1968)

  • ⓒ 강운구, 박경리 (서울 정릉, 1976)
  • ⓒ 강운구, 장욱진 (충북 수안보,1983)
  • ⓒ 강운구, 김기창 (충북 청주, 1984)
  • ⓒ 강운구, 박고석 (서울 원남동, 1974)
  • ⓒ 강운구, 임응식 (서울 종로, 1973)
  • ⓒ 강운구, 최일남 (서울 종로, 1975)
  • ⓒ 강운구, 한창기 (충북 충주, 1996)
  • ⓒ 강운구, 함석헌 (서울 마포, 1968)

사람의 그때

나의 그때

강운구

 

결정은 늘 찍히는 이들 스스로가 하는 것이었고 나는 말없이 그 사람들의 행위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어쩌다 우연인 경우 말고는 어차피 약속하고 만났으므로 연출된 장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나는 어떤 표정이나 포즈를 요청하지는 않았다. 광선 상태나 배경이 좋지 않을 경우에 알맞은 방향이나 위치로 조금 움직여 달라는 부탁은 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가 관장하고 있는 곳에서 마음이 편하며 따라서 표정도 그렇게 된다. 더욱이 거기에는 그 사람이 오래 머물면서 이루어낸 그 사람 고유의 환경이 있다. 그래서 대개 그 작가의 작업실이나 집에서 찍었다. 그러는 게 나의 가장 큰 의도였다.

사람들을 찍으러 갈 때마다 지러 간다고 나는 나에게 말하였다. 찍히는 대상들이 이겨야 그 사람 모습이 그 사람답게 찍힐 것이라고 나는 굳게 생각했다. 찍거나 찍히는 행위에 굳이 이기고 지고가 있을까마는 아직 생각이 어렸을 적에는 나는 그렇게 여겼다.

어떤 사진가들은 자기의 스튜디오에, 자기가 설치하고 조정할 수 있는 배경과 빛 속에 대상을 기어코 앉혔다. 그러면 시간이 절약되고 품이 적게 들기도 한다. 그리고 사진관처럼 찍었다. 그러는 게 뻔하게 이기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러는 사진가에게는 아무래도 약간의 자폐성향이 있을 거라고 나는 짐작했다. 주소 쪽지를 들고 나는 낯선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찾아갔다. 나는 숫기가 모자랐지만, 그 사람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겁내지 않았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나는 거의 모든 사진을 그 사람의 영역에서 그 사람의 빛으로 찍었다. 그리고 혼자서 감히 턱도 없는 다짐을 했다. 안 보이는 것도 찍으리라. 내면도 보이게 하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영혼까지 드러나게 하리라.

작가들의 초상사진은 증명서에 붙이는 증명사진이 아니다. 그래서 정면을 찍은 사진이 아니지만 그 사람의 그때를 증명하는 증명사진이어야 한다. 어떤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는 어떤 이유로건 닮지 않아서 명제를 보기 전엔 누군지 알아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진은 그렇지 않을 확률이 아주 높다. 그렇더라도 누구인지 알아 볼 수 없는 사진도 있을 수 있다. 나는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작가들을 찍으러 가기 전에 그 작가의 책들을 읽고 갔다. 어떤 때는 그게 오히려 해가 되어서 갈팡질팡할 때도 있었다. 책에서 받은 느낌과 실제 그 작가의 성격과 분위기가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았다. 그럴 때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실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경우엔 대상이 내놓고 연기를 하는 게 거슬렸지만 나는 그게 그 사람의 성격을 말한다고 여기면서 그대로 받아들였다.

주인공의 뒤나 옆으로 조금 딸려 들어오는 환경은 그냥 배경이 아니라 그 공간을 지배하는 그 사람의 여러 가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장치이다. 그래서 사진에 포함시킬 때 세심하게 고려했다. 나는 단순하게 구성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쩌다 구성에 파탄이 올지라도 그런 환경이 있을 때는 빠트리지 않으려고 했다.

어떤 필요가 있어서 나의 작업실로 찾아와서 찍어 달라고 한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 이들은 나의 작업실에 들어와서 꽤 당황해 했다. 조명 장치 같은 좋은 시설을 갖춘 스튜디오를 기대하며 왔는데 전혀 그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방이 작기까지 해서였다. 할 수 없이 내 작업실(나는 거의 밖에서 일하기 때문에 그저 책이나 뒤적이고, 딸려있는, 막장보다 더 막장 같은 작은 암실에서 현상하고 인화를 하던 곳이다.)에서 찍을 때는 나의 흔적이 그 사람에게 딸려 들어가지 않도록 애썼다.

기억에는 남아있는데 찾아도 찾아도 나오지 않는 사진들이 있다. 못 찾는 것은 없는 것보다 못하다.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없는 것으로 칠 수밖에 없다. 내가 게으른 탓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드리기도 전에 저 세상으로 가신 분들도 있다. 죄송하다.

나는 유명하다는 사람들을 억지로 찾아 다니지는 않았다. 이 세상을 살면서 어쩌다가 이러저러한 인연이 닿게 되면 만났다. 그래서 사람의 그때에는 유명한(유명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여태껏 살았지만 살아온 모든 기간이 나의 시대는 아니다. 내 작품들의 연도를 꼽아보면 나에게도 한창 때라는 게 있긴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런지도 모르고 그때를 흘려 보냈다.

사람의 그때의 인물 선정은 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 쓰는 작가들로 압축했다. 긴 세월에 걸쳐서 여러 번 찍은 사람들도 많다. 그런 경우에는 가능하다면 맨 먼저 찍은 사진을 선택했다. “그때” 찍은 사진들 중에서 그때 발표했던 사진들보다 좀더 나아 보이는 것을 더러 보게 되면 잠시 주저했다. 그러다 그때의 안목과 느낌을 존중하기로 하고 이내 망설임을 진정시켰다.

사람들 사진을 정리하고 편집할 때는 여러 요소들이 간섭을 하면서 갈등을 하게 한다. 그렇다고 가나다 순서나 태어난 해 순서로 배열하는 것은 너무나 공식적이어서 재미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작가가 할 일이 아닌 듯하다. 공평하게 한다고 사진의 크기를 똑같게 만들어서 전시를 하거나 책에서 똑같게 편집하는 것도 그렇다. 얼핏 평화롭게 보이는 그런 공평함은 그러나 작가의 생각을 정지시킨다. 사진이라는 이미지의 속성에는 방향성과 대립, 대조 같은 요소가 내재되어있다. 책이나 전시장에서는 큐레이터와 디자이너 그리고 작가가 그런 것에 부여하고 규정하는 흐름이 있어야만 된다.

다만 누군가가 쓴 걸 읽어서, 그때의 내 사뭇 어린 마음에 “아첨”이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 그땐 그것을 사전에 있는 그대로만 알았으므로 경계하여야 되는 것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 오래된 사진들 앞에서 이제야 깨달았다. 그때 아첨을 할걸 그랬다.

뭔가 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다. 성격상 내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분들도 더러 있었으나, 사실은, 대개는 내가 그이들 앞에서 쩔쩔맸다. 이 사진들은 그 쩔쩔맸던 결과이다. 어쨌거나 만나게 되었던, 만날 수밖에 없었던 이 모든 분들과의 인연이 새삼스럽게 고맙다. 사람은 대체 한평생에 몇 사람이나 만날까?

사람들 얼굴 위로 빛과 그늘이 부단히 교차한다.

시간은 시계 속에 그대로이고 사람들은 지나갔다.

흐르는 것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