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사진미술관 기획전

사람의 그때

강운구

2021-09-11 - 2021-12-26

ⓒ 강운구, 박경리 (서울 정릉, 1976)
ⓒ 강운구, 박경리 (서울 정릉, 1976)


인사말


강운구 사진의 결산에 붙여서


고은사진미술관은 사진가 강운구 선생의 《사람의 그때》전을 개최합니다.                                                                          

사진의 기록적 가치와 예술적 의미를 가장 솔직한 사진창작으로 변함없이 펼쳐오고 계신, 강운구 선생의 작품 전시를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사진은 시공간 예술이다’는 사진 속 그 시간, 그 장소에 사진가가 존재하였음을 의미하며, 특히 인물사진은 사진가가 사진 작품 속에 등장하는 피사체, 인물과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본 전시 《사람의 그때》는 지난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진가 강운구 선생이 만난 인연의 발자취를 지속적으로 기록한 사진 작업인데, 160명 문인들과 화가들의 인물사진 163점이 전시됩니다.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인물사진은 외형의 기록에 충실한 이미지로 완성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자기자신과 서로의 모습에 특히 관심이 많은 우리는 평범한 인물사진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즉, 피사체인 사람의 존재와 의미의 가치가 함께 표현된 강운구 선생의 초상사진에 주목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덮고 있는 사진은 겨우 182년 전에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얼굴-초상사진을 찍으려고 발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상을, 사람을 찍는 것이 사진의 가장 기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남는 것은 사람 사진 뿐일 것입니다. 

강운구 선생의 초상사진은 평범한 것 같지만 독창적인 아우라(AURA)가 느껴집니다. 촬영 현실에 순응하고 찍고자 하는 대상을 존중하며 진솔하게 찍은 인물사진입니다. 그리고 피사체와 긴밀히 소통하며 인식한, 인간적인 감성을 담백하게 기록한 사진적 시각이 일관성 있게 다가옵니다. 사진가로서의 욕심과 연출을 절제하며 촬영할 인물의 느낌 그대로, 그 사람답게 찍는, 늘 한결같은 50년이 넘도록 일관성을 유지한 관점이 강운구 선생의 사진론이라고 확신합니다. 특히 사진의 지시적 기능과 사진의 추상적 가치 탐구를 통해 발현된 그의 작품들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사람의 그때》 전시를 통해 현실의 충실한 재현과 진실이 공존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의미를 함께 공감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강운구 사진’의 결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은사진미술관이 준비한 강운구 선생의 《사람의 그때》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여러분의 지속적인 성원과 관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재구

고은사진미술관 관장

  • ⓒ 강운구, 박경리 (서울 정릉, 1976)

    ⓒ 강운구, 박경리 (서울 정릉, 1976)

  • ⓒ 강운구, 장욱진 (충북 수안보,1983)

    ⓒ 강운구, 장욱진 (충북 수안보,1983)

  • ⓒ 강운구, 김기창 (충북 청주, 1984)

    ⓒ 강운구, 김기창 (충북 청주, 1984)

  • ⓒ 강운구, 박고석 (서울 원남동, 1974)

    ⓒ 강운구, 박고석 (서울 원남동, 1974)

  • ⓒ 강운구, 임응식 (서울 종로, 1973)

    ⓒ 강운구, 임응식 (서울 종로, 1973)

  • ⓒ 강운구, 최일남 (서울 종로, 1975)

    ⓒ 강운구, 최일남 (서울 종로, 1975)

  • ⓒ 강운구, 한창기 (충북 충주, 1996)

    ⓒ 강운구, 한창기 (충북 충주, 1996)

  • ⓒ 강운구, 함석헌 (서울 마포, 1968)

    ⓒ 강운구, 함석헌 (서울 마포, 1968)

  • ⓒ 강운구, 박경리 (서울 정릉, 1976)
  • ⓒ 강운구, 장욱진 (충북 수안보,1983)
  • ⓒ 강운구, 김기창 (충북 청주, 1984)
  • ⓒ 강운구, 박고석 (서울 원남동, 1974)
  • ⓒ 강운구, 임응식 (서울 종로, 1973)
  • ⓒ 강운구, 최일남 (서울 종로, 1975)
  • ⓒ 강운구, 한창기 (충북 충주, 1996)
  • ⓒ 강운구, 함석헌 (서울 마포, 1968)

사람의 그때

나의 그때

강운구

 

결정은 늘 찍히는 이들 스스로가 하는 것이었고 나는 말없이 그 사람들의 행위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어쩌다 우연인 경우 말고는 어차피 약속하고 만났으므로 연출된 장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나는 어떤 표정이나 포즈를 요청하지는 않았다. 광선 상태나 배경이 좋지 않을 경우에 알맞은 방향이나 위치로 조금 움직여 달라는 부탁은 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가 관장하고 있는 곳에서 마음이 편하며 따라서 표정도 그렇게 된다. 더욱이 거기에는 그 사람이 오래 머물면서 이루어낸 그 사람 고유의 환경이 있다. 그래서 대개 그 작가의 작업실이나 집에서 찍었다. 그러는 게 나의 가장 큰 의도였다.

사람들을 찍으러 갈 때마다 지러 간다고 나는 나에게 말하였다. 찍히는 대상들이 이겨야 그 사람 모습이 그 사람답게 찍힐 것이라고 나는 굳게 생각했다. 찍거나 찍히는 행위에 굳이 이기고 지고가 있을까마는 아직 생각이 어렸을 적에는 나는 그렇게 여겼다.

어떤 사진가들은 자기의 스튜디오에, 자기가 설치하고 조정할 수 있는 배경과 빛 속에 대상을 기어코 앉혔다. 그러면 시간이 절약되고 품이 적게 들기도 한다. 그리고 사진관처럼 찍었다. 그러는 게 뻔하게 이기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러는 사진가에게는 아무래도 약간의 자폐성향이 있을 거라고 나는 짐작했다. 주소 쪽지를 들고 나는 낯선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찾아갔다. 나는 숫기가 모자랐지만, 그 사람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겁내지 않았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나는 거의 모든 사진을 그 사람의 영역에서 그 사람의 빛으로 찍었다. 그리고 혼자서 감히 턱도 없는 다짐을 했다. 안 보이는 것도 찍으리라. 내면도 보이게 하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영혼까지 드러나게 하리라.

작가들의 초상사진은 증명서에 붙이는 증명사진이 아니다. 그래서 정면을 찍은 사진이 아니지만 그 사람의 그때를 증명하는 증명사진이어야 한다. 어떤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는 어떤 이유로건 닮지 않아서 명제를 보기 전엔 누군지 알아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진은 그렇지 않을 확률이 아주 높다. 그렇더라도 누구인지 알아 볼 수 없는 사진도 있을 수 있다. 나는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작가들을 찍으러 가기 전에 그 작가의 책들을 읽고 갔다. 어떤 때는 그게 오히려 해가 되어서 갈팡질팡할 때도 있었다. 책에서 받은 느낌과 실제 그 작가의 성격과 분위기가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았다. 그럴 때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실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경우엔 대상이 내놓고 연기를 하는 게 거슬렸지만 나는 그게 그 사람의 성격을 말한다고 여기면서 그대로 받아들였다.

주인공의 뒤나 옆으로 조금 딸려 들어오는 환경은 그냥 배경이 아니라 그 공간을 지배하는 그 사람의 여러 가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장치이다. 그래서 사진에 포함시킬 때 세심하게 고려했다. 나는 단순하게 구성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쩌다 구성에 파탄이 올지라도 그런 환경이 있을 때는 빠트리지 않으려고 했다.

어떤 필요가 있어서 나의 작업실로 찾아와서 찍어 달라고 한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 이들은 나의 작업실에 들어와서 꽤 당황해 했다. 조명 장치 같은 좋은 시설을 갖춘 스튜디오를 기대하며 왔는데 전혀 그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방이 작기까지 해서였다. 할 수 없이 내 작업실(나는 거의 밖에서 일하기 때문에 그저 책이나 뒤적이고, 딸려있는, 막장보다 더 막장 같은 작은 암실에서 현상하고 인화를 하던 곳이다.)에서 찍을 때는 나의 흔적이 그 사람에게 딸려 들어가지 않도록 애썼다.

기억에는 남아있는데 찾아도 찾아도 나오지 않는 사진들이 있다. 못 찾는 것은 없는 것보다 못하다.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없는 것으로 칠 수밖에 없다. 내가 게으른 탓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드리기도 전에 저 세상으로 가신 분들도 있다. 죄송하다.

나는 유명하다는 사람들을 억지로 찾아 다니지는 않았다. 이 세상을 살면서 어쩌다가 이러저러한 인연이 닿게 되면 만났다. 그래서 사람의 그때에는 유명한(유명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여태껏 살았지만 살아온 모든 기간이 나의 시대는 아니다. 내 작품들의 연도를 꼽아보면 나에게도 한창 때라는 게 있긴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런지도 모르고 그때를 흘려 보냈다.

사람의 그때의 인물 선정은 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 쓰는 작가들로 압축했다. 긴 세월에 걸쳐서 여러 번 찍은 사람들도 많다. 그런 경우에는 가능하다면 맨 먼저 찍은 사진을 선택했다. “그때” 찍은 사진들 중에서 그때 발표했던 사진들보다 좀더 나아 보이는 것을 더러 보게 되면 잠시 주저했다. 그러다 그때의 안목과 느낌을 존중하기로 하고 이내 망설임을 진정시켰다.

사람들 사진을 정리하고 편집할 때는 여러 요소들이 간섭을 하면서 갈등을 하게 한다. 그렇다고 가나다 순서나 태어난 해 순서로 배열하는 것은 너무나 공식적이어서 재미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작가가 할 일이 아닌 듯하다. 공평하게 한다고 사진의 크기를 똑같게 만들어서 전시를 하거나 책에서 똑같게 편집하는 것도 그렇다. 얼핏 평화롭게 보이는 그런 공평함은 그러나 작가의 생각을 정지시킨다. 사진이라는 이미지의 속성에는 방향성과 대립, 대조 같은 요소가 내재되어있다. 책이나 전시장에서는 큐레이터와 디자이너 그리고 작가가 그런 것에 부여하고 규정하는 흐름이 있어야만 된다.

다만 누군가가 쓴 걸 읽어서, 그때의 내 사뭇 어린 마음에 “아첨”이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 그땐 그것을 사전에 있는 그대로만 알았으므로 경계하여야 되는 것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 오래된 사진들 앞에서 이제야 깨달았다. 그때 아첨을 할걸 그랬다.

뭔가 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다. 성격상 내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분들도 더러 있었으나, 사실은, 대개는 내가 그이들 앞에서 쩔쩔맸다. 이 사진들은 그 쩔쩔맸던 결과이다. 어쨌거나 만나게 되었던, 만날 수밖에 없었던 이 모든 분들과의 인연이 새삼스럽게 고맙다. 사람은 대체 한평생에 몇 사람이나 만날까?

사람들 얼굴 위로 빛과 그늘이 부단히 교차한다.

시간은 시계 속에 그대로이고 사람들은 지나갔다.

흐르는 것은 사람이다.


시대의 흔적을 넘어서는 불멸의 초상[1]

 

박상순(시인)[2]

 

여기에는, 참으로 많은, 한국 문학과 예술의 핵심적인 작가, 화가들의 모습이 있다. 100명이 넘는, 시인, 소설가, 화가들이다. 그들과 함께 문학이나 미술을 사회의 영역으로 확대하고 의미의 깊이를 더한 비평가, 출판인, 지식인들의 모습 또한 만날 수 있다.

우리 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문인이나 화가들의 모습을 다 볼 수 있으니 특별히 반갑다. 이들과 함께했던 그 시대의 모습이 사진을 통해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들의 표정, 몸짓, 시선을 통해 한국의 문학이나 미술이 펼쳐온 긴 여정의 출발점, 그들 각각의 예술적 기운이 태동하는 순간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이런 모습, 그때 이 시선으로, 이 표정으로, 우리 문학과 예술이 탄생했다는, 그 역사적 순간을 이들의 표정과 주변 상황으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 사진들은 한국 문학과 예술의 내면까지도 느끼게 하는 매우 특별한 기념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표정은 존재의 의미에서 시작해 존재의 다정함으로도 이어진다. 이분은 누구시고, 저분은 누구시네... 하는 존재와의 대면을 통한 정체의 확인과 더불어 이분들 각각이 지닌 섬세한 표정을 담아낸 사진들이, 이 존재들과의 만남을 한층 다정한, 인간적인 만남의 장으로 인도한다. 삶의 모습이 느껴지는 이런 다정함이나 소박함은 오직 정직한 사진만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가치일 것이다.

아울러 이 사진들은 지난 수십년의 세월을 담고 있기에 한국 사회, 그 시절 사람들의 열정과 더불어 시대적 의미를 또한 전해준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가 숨가쁘게 변화해온 현장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으니 이 사진들이 지닌 가치는 시대의 초상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특별하다.

그래서 이 사진들을 통해 두 가지 사실을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이렇게 정직한 시선으로 포착된 인물들을 통한 한 시대와 예술의 생생한 모습일 것이고 둘째는 그런 섬세함을 전해주는 사진 자체의 독특한 매력일 것이다.


1970년대의 탄생 -문학, 시대와 더불어

이 사진들을 통해 우리는 1960년대 이후 한국 문학과 예술의 현장, 바로 현대문학과 현대미술의 탄생지를 정감과 솔직함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기를 통해서라면 누구나 이런 사진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지만, 지나치게 사회, 경제적 소재에 매달리거나, 한편으로는 시각적 효과에 치우칠 수도 있는 것을 넘어서서 이런 정직한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래서 이 사진들을 통해 우리는 사진 저 너머의 것까지, 존재하는 그것 자체를 냉정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인지할 수 있다. 한 장의 사진이 단지 그것만의 존재 가치를 넘어서 그 이면의 또 다른 가치까지 가늠하게 만드는 이중의 효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너머의 존재 가치라는 말은 어떤 사실의 증명이나 증빙 관계를 넘어선다는 것이고, 존재를 통해 그것의 의미 또는 진실까지 우리의 시야,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뜻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에 있는 고흐의 신발을 보고 농부의 신발이라며 헛다리를 짚은 채로 존재와 존재자라는 철학적 개념을 설명해 나갔지만, 헛다리를 짚은 고흐의 신발이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와 존재자를 감히 허물어뜨릴 수 없듯이, 이 사진들을 보는 우린 또한 어떤 새로운 철학적 개념을 생산하지는 못할지라도, 헛다리는 분명 짚지 않을 것이고, 마치 하이데거처럼 차원을 달리하는 상상의 길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의 충분한 여지를 이 사진들이 이미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상의 길에서 만나는 것은 소박한 일상, 인간적인 표정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의미나 깊이일 수도 있다. 굳이 심오한 무엇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이 사진들은 1970년대, 198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래, 그때는 이랬지!”라는 사실의 회상과 더불어 깊은 상념에 빠져들 수도 있다.

이 사진들 속의 존재들, 그들 대부분이 시인, 소설가, 화가라는 사실을 넘어서 그들의 표정과 몸짓, 배경과 소품들, 빛과 어둠이 만드는 분위기를 통해 우리는 한국의 문학, 미술, 문화에 관한 역사적 특징을 감각적으로 만나고, 이성적으로 짚어볼 수 있는 의미나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의미나 진실에 대한 감응과 인식은 사진가나 사진 그 자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사진가의 시선과 사진을 넘어서는 감응자의 시선이나 태도 또한 사진과 함께 동시에 탄생하여 번쩍이는, 또는 신명 나는 합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진들은 그런 번쩍임이나 신명의 순간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통로를 이미 마련해 놓았다.

한편으로는 퍽퍽할 정도의 정직함이나 연출적 명암 대비를 구사하며 만들어낸 이미지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단순 사실의 기록을 넘어서는 묘한 매력이 보는 이의 시선에서 묻어나기 때문이다. 이 사진들의 흥미로운 이미지 유도 방식을 통해 우리는 한국 문학이나, 예술, 문화의 내면을 짚어보는 즐거운 상상, 때로는 쓸쓸한 회고, 불쑥 튀어나온 잊혀진 기억 등등을 만날 수 있다.

그런 상상, 회고, 기억, 여기 이들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1960년대 이후 한국 문화예술의 현대성, 그것의 탄생 순간을 그려볼 수도 있다. 이 사진 속의 인물들은 주로 1970년대 이후 우리 문화의 핵심을 이야기하는 데 반드시 거론해야 할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는 한편으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편중, 편파, 소외, 차이, 갈등, 외침, 변혁 등에 관한 개선의 의견 표방이나 실천행위가 여러 갈래에서 일시에 폭발했던 시기이다.

1940년 전후에 태어난 신세대의 등장은 이런 새 출발의 원동력이 되었다. 물론 여기 놓인 사진들 가운데는 이미 그 이전에 태어나신 분들도 있지만, 이 책에 실린 문학 분야 사진에서는 그 인물들 대다수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신인으로 등장해 1970년대에 문화적 의미를 정착시키고 확대한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다.

시인들의 경우, 사진집에 배열된 순서를 따라가 보면, 이들 시인만으로 한국 시문학의 역사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조금 치우치거나 일부에 그쳤을지라도 그것은 사진가의 책무가 아니니, 이 시인들의 모습만으로도 한편 충분한 점이 있다. 그리고 이 시인들을 통해서라도 우리는 일제 강점기 이전의 한국 시와 이후 1970년대 중심으로 새로 탄생한 한국 시의 일면을 느낄 수 있다.

소설가들의 사진은 시인들의 사진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 문학이 소설에 편중된 것은 분명 아니니, 이 책에 실린 사진으로만 본다면, 어떤 보이지 않는 시선이 이렇게, 소설에 편향되고 소설가들에게 편중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 시선의 정체를 추적해 본다면, 970년대를 전후해서 문학에서도 산업화, 대중화를 꾀하면서 사진이 소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틀에서 효용성을 발휘했음을 짐작할 수도 있다.

이렇게 1960년대, 70년대를 기반으로 움트기 시작한 한국 문학의 새로운 기운이 이 사진들 속에 담겨있다. 마치 이집트 미술의 특징이었던정면성의 원리가 그리스 조각에서는 그보다 역동적인 몸짓으로 바뀌었듯, 이 사진들 속의 몸짓과 표정 또한 굳이 사진가의 어떤 포착 의도나 시점과 더불어 시인, 소설가들의 태도와 몸짓 또한 새로운 초상 사진을 향해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볼 수도 있다. 비록 사진기 앞에서는 어색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미 사진가와 함께 새로운 장면을 향해 마음이 움직였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사진들은, 이 사진 속의 표정이나 분위기는, 그들의 문학 작품에 대한 이해 없이 단지 보는 즐거움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모든 인간의 삶이 크게 다를 바 없고, 누구든 자신의 노동에 집중하는 진지한 태도와 열정을 지닐 것이지만, 시인 소설가들의 사진을 이렇게 많이 한곳에 모아놓고 주목해 본다는 행위에는 반드시, 그들의 노동이나 작품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문학비평가들의 사진 또한 여기에 있다. 1960년대에 움트기 시작해, 마침내 1970년대에 꽃을 피우고 1980년대를 열어젖힌 한국 문학의 새로운 탄생 시기, 새로운 대상과 화법을 찾아 나섰던 그 출발지의 모습이 바로 이 사진들 속에 있다.


몸짓과 표정으로 쓴 한국 조형 예술의 역사

문학이 시대정신이나 문학성을 통해 1970년대라는 한 시기를 완성했다면, 미술에서는 조형예술의 문화를 사회적으로 정립하면서 그것의 가치를 공유하는 확장의 시대를 이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문화생산 주체의 활동이 전 시대에 비해 크게 확대된 점은 분명하다.

이미지를 다루는 사람들의 사진은 사진가 주명덕의 사진부터 이 책에 등장한다. 앞에 등장한 문학인들의 몸짓과 비교해서 본다면, 문학인들은 비록 이집트 미술의 정면성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그리스식인 클래식 분위기가 다소 배어있다면, 이미지를 다루는 사람들의 사진은 그보다는 더 일상적인 몸짓이다.

이들의 모습 또한 앞서 언급한 시인, 소설가들처럼 그들의 작품과 함께 그들의 표정을 바라보아야하는 점은 같지만, 시인, 소설가들의 초상은 한층 더 강조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문학, 특히 소설이 플롯을 구성하면서문제적 인간을 다루는 데 집중하고, 그것을 오직 언어라는 매우 개념적인 기호로 표현하는 까닭에 그문제적 인간을 다룬 사람의 얼굴을 마치 한 장의 삽화처럼 삼는 데에 적절하기도 하다.

화가들의 얼굴은 이미 그들의 미술 작품이 시각적으로 앞서기 때문에 특별한 개인사를 지닌 경우가 아니라면 작품 이미지가 인물에 선행한다. 화가들을 다룬 사진들은 한편으로 작업 과정이나 공간을 들여다보는 데 더 중요한 가치를 제공할 것이다. 그런 사진들은, 문학이 몰두하는문제적 인간보다는 공간과 환경이 작품으로서 출가하기 이전의 속세 풍경을 통해 표명성 또는 물질성이라는 미술 작품의 원천요소를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것은 문학적 이미지를 만드는 문학인들의 사진과는 또 다른 차원, 경우가 다른 물질적 경로이다.

1970년대 문학 매체가 사진과 더불어 새로운 인물들을 이미지화하는 데 신속하게 대응한 것과는 다르게 미술 관련 매체는 기존의 이미지를 강화하고 전설화하는 데 관심을 쏟기 위해 사진 이미지와 손을 잡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사진가의 역할은 과거의 신비화일 수도 있고, 현재의 단발성 외침이나 아우성일 수도 있고, 가득 찬 욕망의 가공자이거나 가공의 미래를 향해 현재를 버리는 일일 수도 있으며, 오늘 하루의 소박한 노동이나 무지개빛 좋은 꿈을 간직한 노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사진집의 화가들만으로 구성한 미술사를 따로 집필할 수도 있을 만큼 중요한 인물들이 이 책에 다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 덧붙여 아쉬운 점을 이야기한다면, 시인들 사진은 조금 더 보완되고, 일제 강점기에 화업을 시작한 화가들만큼 이후 세대의 화가들 사진도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가는 단지 예술가들의 한 순간을 일상에서 찍을 수밖에 없지만, 사진가의 뒤에는 그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거나, 반드시 인지할 필요까지는 없는 각각의 분야에 대한 역사적, 비평적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성만을 강조한 사진의 생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이 사진들은 짧은 현장성을 노리는 그런 사진들이 아니기에 나의 아쉬움은 어쩌면 즐거운 상상을 담은 청탁의 마음에 가까울 것이다. 이 사진들은 몸짓과 표정, 사진으로 쓴 한국 조형 예술의 역사와도 같기 때문이다.

 

정직하고 엄격한 감각으로 탄생한 존재와 존재감

이 사진들은 참으로 많은 것을 담고 있다. 표정, 눈길, 몸짓, 손길 그리고 어떤 표정이나 모습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이나 배경들...... 한 장 한 장, 사진 속으로 들어가다가 너무 많은 모습, 시대의 정서가 뿜어내는 분위기 때문에 숨이 차기도 하다. 그래서 한참을 멈추었다가 다시 사진 속으로 들어가 보지만 어떤 배경의 모서리에서는 다시 눈길을 멈출 수밖에 없다.

이 사진들은 냉정하다. 그 냉정함은 약은 곧 또 하나의 독이라는 사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사진들은 정직하다. 아주 순박한 당의(糖衣)만을 걸치고 있다. 기기묘묘한 수작은 부리지 않으려는, 한편으로는 그것에 집착할 정도로 과도하게 정직한 고집스러움이 있다.

달콤하지 않으니, 그런 정직함은 요즘의 관점으로 보자면 구식이다. 사진기가 발명되기 훨씬 전까지로 이 정직함을 이루는 시각적 태도를 거슬러 올릴 수 있을 만큼 오래된 존재의 현전 방식에 관한 정직함이다. 여기의 흑백 사진들은 카라바조만큼의 극적인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를 구사하지는 않지만, 마치 그것을 연상케 하는 극적인 명암이 존재를 드러나게하면서 존재감으로 나아간다. 존재와 존재감에 대한 연출 언어가 들어있다.

그래서 여기의 사진들은 다른 무엇인가를 발명해내려고 애쓰기보다는 존재와 존재감에 다가가는, 정직한 사실성을 품고 있다. 그래서 다정하지는 않다. 아마 이 사진가의 성품도 그럴 것이다.

정직한 사실성이라는 말은 연출적 명암법에 가까운 표현 양식이 존재의 양태를 강하게 고정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자연스러운 사실들은 대개 우리 앞에놓여있다’. 책들이, 꽃병이, 또 그런 무엇들은 대개 심리적으로 놓여있지만, 이 사진가에게는 그 대상이나 존재들이 고정되어 있다. 흩어지지 않고, 강하게 포착 또는 포박되어 있다. 그런 포박을 움켜쥠으로서의 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놓아버리는, ‘방치된 사실과는 다르다. 그래서 각각의 존재 형태들은 단단하다. 단단하게 고정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꾸밈이나 장식이 불필요하다.

존재에의 집중, 그런 존재감, 바로 그것이 이 사진들의 정직함으로 빚은 가장 감각적인 이야기를 전해줄 것이며, 그런 존재감을 지닌 이 사진들은 분명 단 하나의 생명에 집중하는 불멸의 사랑 이야기로 남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강운구의 이 사진들은 한 시대의 문화적 표정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순간의 흔적을 넘어서는 불멸의 초상이 될 것이다.

 



[1] 이 글은 한글 원문의 축약본입니다.

[2] 박상순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서양화 전공) 졸업. 시인으로 등단해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문학 출판사 민음사의 대표 편집인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