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의 녹음이 짙어지는 8월, 푸른 바다 도시 부산에 위치한 고은사진미술관(이사장 김형수, 관장 이재구/경성대학교 사진학과 교수)은 2009년 8월14일부터 10월31일까지 사진가 이상일 전을 선 보입니다.
1956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이상일은 1992년 경북산업대학교 사진영상학과에서 사진 학을 공부하고 1995년 중앙대학교대학원 사진학과에서 순수사진을 전공하였습니다. 2000년 광주비엔날레 재단에서 수여하는 ‘광주비엔날레 최우수 기획전상’을 수상하면서 주목 받기 시작하였고, 2009년 동강국제사진 제 국내부문 에서 동강사진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독창적 사진적 시각을 서서히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상일은 사진을 통해 그 스스로 사진행위가 ‘타자를 통해 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과 같이 자신과 타자의 각기 다른 삶의 경험 속에서 드러나 밝혀지는 ‘인간관계-타인과 사진가 자신과의 관계’와 ’삶의 지속성- 다양한 삶들은 지속되어진다’는 명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진은 <으므니>, <망월동> 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이 격정적인 감정이 쏟아졌음에 틀림없는 개인적인 경험들을 오히려 덤덤하고 관조적으로 바라만보면서 마치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기록하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듭니다. 하지만 곧 그의 감정들은 없었던 게 아니라 숨겨놓은 것이고 쌓이고 쌓인 감정들은 그 후 계속 된 시리즈인 <망월동> 과 <오온(五蘊)> 시리즈에서 흔들리지 않고 일정한 수준으로 작품 안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본 전시에서는 사진가 이상일의 ‘나를 찾는’ 사진행위에 있어서 작가 개인적으로 ‘충격적 감정의 경험’의 시기에 제작된 <으므니> 시리즈와 <으므니>로부터 계속된 ‘삶의 이유’를 찾는 여정을 최근작인 <오온(五蘊)> >시리즈를 통해 선 보입니다. 대형작품 모두 흑백 은염프린트(gelatin silver- print)로 제작되어 최근 불고 있는 대형디지털 프린트 속에서 한 여름의 시원한 바람처럼 신선하게 선보일 이번 전시는 10월31일까지 계속됩니다.
RESET
이상일이 범어사에 눌러 살며 새벽마다 찍은 사진들을 놓고 갔다. 창틀과 책꽂이에 그것들을 한 장 한 장 올려놓자 어느새 사위가 까만 그림자들로 둘러싸였다. 형광등 불빛은 환하였지만 어둡고 모호한 기운이 방 전체를 감싸며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전시장 벽면에 걸릴 크기로 확대된 사진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확 돋는다. 몸은 이처럼 대번 그의 사진에 반응한다. 범상치 않은 이상일의 사진은 이미 내 안에 무언가를 심어 놓았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다. 아무 것도 의도하지 않았거나 혹은 극도로 함축된 새로운 사진의 안쪽을 문외한으로서는 제대로 들여다 볼 수가 없다.
그가 오래 전에 찍은, 온산공단 해변에서 물수제비를 뜨는 아이의 사진은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늘 마음에 아프게 꽂혀있다. 그가 궁극적으로 담아내려 한 것은 그 온산면 당월리의 빗물에 갇힌 촌집 마당이거나, 먼 길을 떠나며 점차 숨결을 거두시는 ‘으므니’거나, 망월동의 영정 속에서 면사포를 쓰고 웃는 새 신부와 같은 대상들 자체였을까? 평생 꽃이라고는 찍어본 적이 없을 것 같은 이상일의 사진이란, 하나의 사무침을 거쳐 또 다른 사무침에 다다른 흔적들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제 이상일은 집을 나서 멀찌감치 가던 걸음을 단숨에 되짚어 와서는 문을 열고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서버린 듯하다. ‘오온(五蘊)’이란 난해한 열쇠를 우리에게 남긴 채. 요컨대 그는 과거와 전혀 다른 사진을 하필 만물이 새로 깨어난다는 시각에 맞춰 찍음으로써 단호하게 새로운 출발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의 리셋은 놀라운 장치이다. 종일 지루하게 몰두하던 작업에서 문득 벗어나고 싶을 때 리셋 버튼을 눌러본다. 화면을 겹겹이 덮고 있던 생각과 관계들이 순식간에 까만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팡파르와 함께 ‘새로운 시작’이란 글이 떠오른다. 가끔은 그렇게 삶을 완전히 새로 시작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우리 발걸음의 궤적을 돌아보면 그것은 결국 중심을 공유하는 크고 작은 동심원들로 남아있으리라. 공장 굴뚝 옆 황량한 어촌마을과 잔설이 녹는 망월동을 지나 이제 이상일은 새벽 범어사 길을 가고 있다. 그의 동심원들 한가운데에서 형형하게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권 융 (경성대학교 교수, 국제무역통상학)
ⓒSangill Lee, 120x120cm
ⓒSangill Lee, 120x120cm
ⓒSangill Lee, 120x120cm
ⓒSangill Lee, 100x200cm
ⓒSangill Lee, 100x200cm
Sangill Lee, 100x200cm
ⓒSangill Lee, 51x70cm
ⓒSangill Lee, 51x70cm
작가프로필
이상일 SanGil Yi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