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분단경관의 기록과 평화적 감수성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가까워오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것을 평화적으로 매듭짓지 못한 시대에 살고 있다. 휴전선 접경지역에 세워진 통일전망대나 평화전망대에서 비무장지대와 건너편 북녘 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산이나 강줄기의 유장함 속에 철조망과 지뢰지대 표지판의 섬뜩한 생경함이 섞이면서, 한국 현대사의 굴곡 하나하나에 서려있는 희극 같은 비극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비무장지대와 그 주변의 민간인 통제구역은 이름과는 달리 한반도에서 가장 군사력이 집중된 공간이어서 긴장감이 일상화되어 있는데, 우리는 이 곳의 독특한 풍경을 분단경관(Bundan-scape) 이라고 부른다.
한반도 분단의 경계는 비무장지대와 한강하구중립수역, 그리고 바다의 북방한계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분경은 민족 분단의 상징일 뿐 아니라 자유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대치하는 냉전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 분경은 대한민국 국군이 아니라 유엔군사령부가 관리하는 지역이어서 그 성격 또한 미묘하고 복잡하다. 접경지역은 남북의 병사들이 짧지 않은 청춘의 시간을 바치는 장소이고, 최신 장비를 가지고 불철주야 서로를 감시하는 군사적 근대성(military modernity)이 구현되는 장소이지만 국제적 이해가 충돌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불신과 대립의 현장이 교류와 협력, 화해와 평화를 위한 창의적 실험 공간으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칠 수가 없다.
‘단절된 철로 위의 녹슨 기차’나 ‘구멍 난 철모 사이로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는 꽃’들은 비무장지대를 시간이 멈춘 장소로 상상하도록 하지만, 이것은 오랫동안 안보상의 이유로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 조금만 주의하여 관찰한다면, 이곳이 끊임없이 변해 왔고 나름대로의 역사를 가진 특별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곳에도 비무장지대를 가로지르는 물줄기처럼 냉전의 시간이 흘렀고, 화해의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판문점에 가본 사람들은 알지만, 공동경비구역(JSA)의 상징이었던 경비병들의 선글라스는 사라졌으며, 양 손을 약간 들어 올려 주먹을 쥐고 기마자세를 취하던 살벌함도 없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판문점의 경비병들이 언제부터 선글라스를 끼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 자세를 취하게 되었는지 잘 모른다.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감시초소(GP)들은 남북의 분단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2018년 9.19 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에서 공히 10개씩의 휴전선 감시초소들이 해체되었다. 북은 남으로, 남은 북으로 조금씩 밀고 나가 너무 가까이 위치하게 된 감시초소 사이에서 우발적 충돌이 발생하면 남북 화해의 무드를 깰 수 있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이 초소들이 언제 어떻게 해체되었는지는 알지만, 정작 이들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잘 모른다. 안보가 엄중했던 시기에 이런 것들은 군사비밀로 간주되었고, 제대로 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분단시대가 우리의 희망과는 달리 길어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종식될 수 밖에 없는 역사적 시간에 속한다면, 비무장지대와 접경지역 또한 언젠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역사적 공간에 속한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숙명처럼 주어진 분단경관이 70년간의 어마어마한 고통과 비용을 지불하고 얻은 작은 보상이라는 점 또한 잊어서는 안된다, 분단경관에 대한 꼼꼼한 기록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런 기록 중의 하나가 사진이다. 이 책의 사진들은 역사의식에 투철한 작가에 의한 분단경관에 대한 기록이다.
비무장지대를 포함한 접경지역은 6.25전쟁의 결과로 생겨났지만, 이 곳이 중무장지역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베트남전쟁과 동아시아의 냉전이 격화된 1960년대 후반기부터였다. 1967년부터 허술한 목책이 굳건한 철책으로 바뀌고, 1970년대부터 초라한 초소는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요새로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의 트라우마가 북한군에게 군사시설을 지하화 하도록 강요했다면, 한국군에게는 다양한 대전차 장애물을 주요 예상 접근로에 건설하도록 유도했다. 북한의 선박 접근을 막는 용치는 하천이나 해안가에 병사들이 열병하듯이 세워졌고, 식별하기 쉽지는 않지만, 평야지대에는 콘크리트 장벽도 건설되었다. 비무장지대에 살고 있는 야생 동물이나 식물들과 함께 언제 어디에 뿌려졌는지 모르는 지뢰, 그리고 감시초소들이 분단경관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었다. 민간인 통제구역에서 황무지로 변한 농경지를 다시 개척하여 식량생산에 활용한 것도 이 시기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형성된 자립안정촌과 함께 1968년부터 형성된 재건촌 그리고 1973년의 통일촌들이 제 자리를 잡아가면서 나타난 부수적 효과가 겨울 철새들의 도래였다. 임진강이나 한탄강 유역은 탐조관광을 포함한 생태관광지가 되었다. 이렇게 분단경관은 끊임없이 변화되었고, 정치군사적 필요에 따라 재구성되어왔다.
한국전쟁과 휴전직후의 모습을 찍은 한국인 사진가들이 없지 않지만, 이를 보다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미군 사진병들이나 서구의 사진기자들이었다. 이들이 한국을 떠난 후, 접경지역은 그저 병사들의 고투의 현장일 뿐, 볼거리로서의 경관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안보상의 이유로 일반 시민들뿐 아니라 사진가들도 비무장지대와 접경지역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비무장지대와 접경지역이 의미 있는 경관을 가진 장소로 바뀐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땅굴’ 덕분이었다.
그것이 발견되면서 안보관광이 시작되었는데, 이를 통해 분단경관은 볼거리로 재 탄생했다. 안보관광은 보다 넓게 그리고 보다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장소에 전망대를 설치하도록 했다. 그러나 주요 시설들은 어디까지나 <촬영금지>였다. 그나마 사진가들에게 열린 기록의 작은 틈새가 군사홍보용 사진 촬영이었는데, 그 경우에도 전시나 출판은 금지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찍은 사진은 작업실 서랍에 오랫동안 묻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교류와 화해의 움직임은 분단경관을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안보관광에 조금씩 평화라는 단어가 수반되면서, 분단경관에 부여하는 의미도 바뀌기 시작했다. 안보관광이 분단경관을 보면서 경각심을 키우고, 준엄한 현실인식을 하도록 요구했다면, 평화관광은 이를 보면서, 냉전적 감각보다는 평화에 대한 희망과 상상력을 키울 것을 주문한다. 사람들의 주관적 상상의 세계에 국가권력이 관여할 수 있는 범위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물론 관광의 효과가 주문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평화라는 프레임은 분단경관의 소비에 중요하게 작동한다. 다른 한편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사진가들이 오래 전에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꺼내 전시를 하거나 사진집으로 출판하기 시작하였다. 이 사진들이 분단이라는 현실을 시민적 일상으로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분단경관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사진가들이 찍은 작품들은 분단경관에 대한 기록일 뿐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이를 바라볼 것인가를 보여주는 나침반이기도 했다. 사진가들의 미학적 감수성을 통해이 사진들이 역사적 기록을 넘어서 예술 작품으로 전환되는 경향도 생겨났다.
분단경관을 찍은 사진가들이 많지만 박종우의 작품과 작품집은 매우 독특하다. 그에게 2009년부터 비무장지대와 그 안에 있는 감시초소들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는데, 이 사진들은 2017년독일의 유명한 사진출판사인 슈타이들( Steidl )에서 『DMZ』라는 사진집으로 출판되었고,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 사진집은 접경의 분단경관을 9가지 범주로 구분했다. DMZ의내부, 정찰( Reconnaissance ) , 휴전선감시초소, 공동경비구역, 남방한계선, 일반전초( GOP ) , 전방전투지역( FEBA ) , 민간인통제구역,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녘 풍경이다. 비무장지대의 감시초소 사진들은 외부에서 찍은 것 뿐 아니라 건물 내부에서 찍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체계성은 다른 사진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박종우는 2020년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비무장지대 DMZ》 사진전을 개최하면서 한국어판 DMZ 사진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이 사진집은 비무장지대의 모습을 1 ) 갈 수 없는 숲, 2 ) 정찰, 3 ) 공동감시구역, 4 ) GP 등으로 구분하였고, 여기에 5 ) 한강하구 중립수역, 그리고 6 ) 북방한계선 등의 모습을 더하여, 총 6개채프터로 구성되었다. 이런 구성은 분경의 모습 전체를 망라하는 것이다.
‘갈 수 없는 숲’은 비무장지대 생태의 건강함과 아름다움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이 곳의 생태가 항상 인간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자연적인 것은 아니다. 주기적으로 시계 청소가 이루어지고, 크고 작은 사고들도 발생한다. 이 곳의 풍경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4계절보다 더 변화무쌍하다. 그곳을 ‘단절’의 철조망과 장벽들이 예리하게 지나간다. 서늘한 풍경이다.
‘정찰’은 비무장지대 안에서 움직이는 병사들의 핵심적 임무와 이들의 예민한 시선들을 다루고 있다.
수색과 매복은 비무장지대 안에서 이루어지는 군사적 활동의 핵심적 범주들이다. 위장과 긴장이 무엇인지가 병사들의 얼굴과 몸 동작 하나하나에 쓰여 있다. 분단경관이 병사들의 손과 발, 그리고 눈과 귀 속에 자리잡고 있다.
판문점에 있는 ‘공동경비구역’은 비무장지대에서 유일하게 군사분계선이 그어지지 않은 공간으로 출발했지만, 1976년 이른바 ‘도끼만행’ 사건으로 그 공간마저 분할되어 이름과는 다른 구역이 되었다.
이 곳은 휴전 이후 군사정전위원회의 회담이 열리는 장소로 활용되었는데, 1991년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가 미군에서 한국군으로 교체되자 북한의 거부로 회담이 더 이상 열리지 않고 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남북 정상이 여기에 있는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모습을 연출했고, 연이어 북미정상간 만남에서도 미국 대통령이 경계선을 넘었다가 돌아오는 모습을 또 다시 연출했다.
GP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휴전선 감시초소이다. 이 감시초소들은 파주에서 시작하여 고성까지 배치되어 있다. 북측의 감시초소는 남측 초소보다 초라하게 보이지만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고 지하화되어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숫자가 작은 남측 초소는 더 육중하다. 유엔기와 태극기가 함께 펄럭이는 것은 이 초소가 기능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망원경으로 보면, 북측 초소에도 두 개의 붉은 기들이 걸려 있음을 알 수 있다. 2018년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이 감시초소의 일부가 해체되는 광경이 보도되기도 했다.
한강하구 중립수역은 비무장지대와는 다른 분단경관을 가지고 있다.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는 지점부터 시작하여 서해에 이르는 이 구역은 가깝게는 강 줄기를 따라 배치되어 있는 철조망과 용치들의 모습을, 멀리는 북녘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이 사진들이 보여주는 풍경 뒤로, 이미 사라져버린 경관들, 즉 연평도에서 마포에 이르는 연안 항로를 구성했던 작은 포구들과 실향민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 중립수역의 대안에는 개풍이나 연백이라는 전쟁 전 38선 이남 지명들의 추억도 남아 있다. 비무장지대가 주로 수복지구에 해당된다면, 이대안들은 일종의 상실지구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사진들은 북방한계선을 넘나드는 경관들이다. 북방한계선에 가까운 섬, 연평도와 백령도는 원래 생활권이 전혀 달랐지만, 1970년대에 서해 5도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였고, 또 육지와 멀리 떨어진 ‘낙도’가 되었다. 세계적인 탈냉전의 시기에 뒤늦게 찾아 온 연평해전 이나 포격전의
상흔이 사진 속에 선명하다. 뿐만 아니라 백령도에서 바라보는 장산곶의 아련한 모습이 작가의 렌즈를 통해 생생하게 포착되어 있어서 멀리 몽금포타령이나 강령탈춤, 또는 재령별신굿의 모습이 사진 속에서 배어 나오는 듯하다. 그러나 저녁 노을 속에 병사들의 칼 끝이 잠겨 있다.
이번 사진전과 사진집은 우리가 직접 가기 힘들고 보기 어려운 장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진들은 분단경관을 보여주는 기록의 보고일 뿐 아니라 평화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작가의 시선이 머물렀던 흔적이기도 하다. 작가는 때로는 헬기를 타고 망원렌즈를 이용하여 비무장지대의 모습을 찍기도 하고, 때로는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대상에 근접하여 찍기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비무장지대의 스펙터클한 경관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작은 생명체 속에 들어있는 섬세한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사진 한 장, 한 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붙어 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역사의식과 미학적 상상력을 겸비한 작가만이 이런 섬세하고 구체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사진 하나 하나가 철조망 뒤에 버려진 시이다. 이 사진들을 통해 우리의 삶이 조금이나마 풍부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작가의 평화에 대한 감수성과 미학적 상상력에 빚지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정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