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반하여: 세렌디피티, 변형, 픽처에 대한 단상
Against Photography: Serendipity, Metamorphosis and Picture
경일대 교수 손영실
황규태는 동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경향신문 사진기자를 거쳐 본격적으로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60년대 초에는 흑백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했고 1965년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컬러필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필름 태우기, 차용과 합성, 이중 노출, 포토몽타주 등의 실험을 거듭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개척해 나갔다. 1980년대에는 디지털 컴퓨터, 스캐너, 포토샵을 활용하며 이미지의 확대와 포토몽타주 작업을 심화해갔고 1990년대부터 디지털 이미지의 적극적 변용에 매진해 오고 있다.
암실에서의 인화 작업부터 컴퓨터 작업까지, 신문사가 요구하는 증거 사진에서부터 예술적 작업에 이르기까지, 황규태는 사진과 관련한 모든 것을 섭렵해왔고 최근에는 사진의 경계를 넘어서는 픽처(picture)를 창조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초기 흑백사진에서부터 <포토몽타주>, <버너그래피>, <블로우업>, <픽셀> 시리즈를 아우르는 120여 점의 작품들을 선보임으로써, 그의 예술 세계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작업들을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사진의 발명으로 인간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눈이 아닌 카메라 아이(camera eye)를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헝가리의 화가이자 사진가였던 모홀리-나기(László Moholy-Nagy)는 카메라 아이에 기초한 ‘뉴 비전(New Vision)’ 개념을 제안했다. 그는 벌레나 새의 눈으로 본 세상, 다중노출 등에 관한 다양한 시각적 실험을 하면서 시각적 대상의 문제가 아닌 ‘어떻게 보는가?’의 문제를 제기했다. 이처럼 카메라는 근대적인 시각 체계인 원근법으로부터 탈피하고 육안의 시각적 한계를 초월하여 새로운 시각을 모색하는 중요한 수단이었고 사진적 전환(photographic turn)은 무엇보다 ‘이미지 기술을 통한 바라보기’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에서 시작되었다. 1920년대의 포토몽타주는 다양한 합성적 대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세상 존재들의 탈맥락화를 가져왔다. 또한 199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디지털 사진은 데이터나 메타-데이터로부터 창조되며 프린트나 스크린 혹은 벽에 투영된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포토몽타주가 가져온 존재들의 탈맥락화를 넘어선 시각 이미지의 세계에서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사진이 아날로그 혹은 디지털이건, 물질적 형태 혹은 컴퓨터 데이터이든지 간에, 우리는 여전히 이미지를 바라보고 이야기한다. 지속적인 기술 발전 속에서 사진은 큰 변모를 겪었으나 카메라나 디지털 컴퓨터와 같은 테크놀로지-기반 이미지의 생산 방식은 사진의 바라보기 방식을 계속해서 견인하고 있다. 프리드 리친(Fred Ritchin)은 저서 『사진 이후(After Photography)』에서 디지털 사진이 사진의 존재론에 지속적인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사진 자체를 반영하거나 비평하는 메타-이미지(meta-image)의 측면을 가진다고 주장했다.1 황규태는 최근의 <픽셀>시리즈에서 사진의 사실적 재현에 반하는, 인간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픽셀을 매개로 이미지에 관한 사유를 확장시킨다.
여기서는 1960년부터 2022년까지 황규태의 작업 세계를 그가 개척한 다양한 조형 언어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가운데 작품 세계를 조망할 것이다.
1) 1960~1970년대 사진
황규태는 경향신문 사진기자로 출발하여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한국사진계에 생활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흑백사진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그의 사진은 주관적인 면모를 강하게 보였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이 점은 그가 <현대사진연구회>의 회원으로 가입하여 발표했던 작품들에서 명확히 나타났다.
매체에 대한 태도의 측면에서 본다면 그의 작품들은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의 특성을 보인다. ‘낯설게 하기’ 전략은 황규태 만의 고유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럽이나 미국, 러시아 등의 나라들에서 연극이나 미술, 사진 등의 영역에서 취해진 시학적(poetic) 전략이었다. 시학이란 창작자의 생각을 정리하고 체계화한 학문 분야이다. 1920년대에 이른바 구성주의(constructivism)를 표방했던 일부 러시아 예술가들은 귀족적이고 부르주아적인 예술의 형식의 타파를 위해 ‘예술을 위한 예술’ 이 아닌 ‘삶 속의 예술’을 목표로 삼았다. 나중에 스탈린식 사회주의리얼리즘에 의해 비난받고 쫓겨나가게 될 초기 사회주의 시대의 이러한 미학은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사회적 목적에 이바지하려고 하는 것과 별도로, 예술상의 실험도 허용했었다. 혁명 예술의 가능성은 입체파의 기하학적인 추상화를 흡수하고 콜라주 과정을 중시했던 러시아의 화가이자 조각가 로드첸코(Alexandre Rodtchenko)를 통해 구현되었다. 그는 낡은 매체에서 새로운 개념이 표현될 수 없고 예술가는 매체의 고유한 특성을 실험하고 발견해야 한다는 팩투라(fakura)를 지지하며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전략인 ‘낯설게 하기’ 방식을 적용하여 클로즈업, 하이앵글(high angle), 로우앵글(low angle) 등 다양한 시점에 기초한 사진을 제작했다. 과감하고 독특한 프레이밍에 의한 사진적 구성이 사회정치적 격동기인 1960년대 한국 사회의 여러 면모들을 카메라로 담은 황규태의 초기 흑백 사진에도 나타났다.
그는 1960년대 중반부터 이중노출, 다중 인화, 포토몽타주와 같은 실험적 기법들을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여러 이미지 요소를 발견하거나 차용하여 한 장의 사진을 만들었다. 실제로 대학에 다닐 무렵에 알게 된 초현실주의 사진가인 제리 율스만(Jerry Uelsmann)의 포토몽타주 사진에서 큰 영향을 받기도 했고 60년대 후반 <영원한 비전(Eternal Vision)>전에서 보여진 레이 메츠커(Ray Metzker)의 실험적인 태도에서도 황규태와의 접점을 찾을 수도 있다.
황규태의 실험에는 사회학적 의미가 있다. 그가 국내 사진계에서는 물론 미술계에서조차 전혀 시도되지 않았던 것들을 1960년대에 실행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의 한국에서는 미술계에서도, 어쩌면 예술의 많은 영역에서 모더니즘이 충분히 실험되지 않았다. 미술에서 황규태의 몽타주와 비슷한 발상에 기초해 창조된 것으로 콜라주가 있다. 1960년대 한국인 화가로서 콜라주를 시도한 이응노를 꼽을 수 있는데, 그가 60살 무렵에 프랑스에서 했던 실험을 황규태는 30대에 미국에서 한 것이다. 일찍이 예술에 관한 선구안을 갖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황규태는 1973년 서울 프레스 센터(구 신문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 전시에서 그는 환경과 심리에 관한 주제를 이중 노출, 몽타주, 콜라주, 필름 태우기 등을 활용해 제작한 컬러사진을 발표했다. 그가 1960년대 미국 할리우드의 슬라이드 현상소에서 암실 기사로 일할 때 처음 시도한 필름 태우기인 버닝(burning)은 필름에 열을 가하여 변형시켜 파생되는 우연적 효과를 활용하여 표현한 것이다. 작품 <이카루스(Icarus)>는 그의 다른 작품에 나타났던 원자탄 투하, 비행기 추락과 같은 이미지와 연계되며 인류의 위기 상황을 드러냈고, 작품 <지구>에서는 녹아 흘러내리는 태양을 상기시키는 효과적 방법으로 버닝을 채택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작업에 관해 “내 일상의 사실들 속에서 미를 쫓기보다는 나의 사유 속 어딘가에 내재한 어떤 공간 혹은 순간들을 나만의 미로 선택 형상화했다."2 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생겨난 물음에 기초했다.
이 시기 황규태의 작품에 드러나는 또 하나의 서구적 미술 기법에는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이 있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é Margritte)는 하나의 사물을 이질적 맥락에 배치하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통해 새로운 의미의 창출을 시도했다. 황규태는 마천루와 인간의 눈, 자동차 안의 두 눈, 대도시와 인간 같은 모순되고 상반되며 어울리지 않는 사물들을 병치시킨다. 특히 만 레이(Man Ray)의 입술과 거대한 붉은 태양처럼, 감성적으로 끌리는 대상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포토몽타주 기법을 통해 다른 대상과 결합시켰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달, 물고기 뼈, 뇌, 돈 뭉치 등에서 생태적, 환경적, 문명적 관심사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는 강렬한 명암과 색채의 대비를 통한 화면 구성을 통해 조형적,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우선시 했다.
그의 포토몽타주 작업은 점차 디지털 몽타주로 나아갔다. 작품<조우(Encounter)>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otti)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인 <천지창조(Creazione di Adamo)>와 유사한 구성 속에서 인간의 손과 기계장치로 된 손이 만나는 순간을 표현한다. <도시의 기억>과 같은 작품들은 빅터 버긴(Victor Burgin)의 <종말(The End)> 시리즈와 유사한 면모을 보이며 도시에서 인간의 꿈과 욕망에 관한 판타지를 연상시킨다. 이런 작품들을 고려하면, 황규태는 서구적 모더니즘을 누구보다 빨리 잘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종종 타인의 사진 혹은 미술 작품 속 대상이나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하는데, 이와 관련해서 자신의 인용, 레디메이드 기법이 뒤샹(Marchel Duchamp)으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차용, 인용, 모방, 패러디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스트적 전략은 디지털 작업에서 훨씬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제프리 바첸(Geoffrey Batchen)에 따르면 사진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며 테크놀로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사고 혹은 적어도 욕망과 개념의 지속하는 구조의 구현으로서, 자연, 지식, 재현, 시간, 공간, 관찰하는 주체, 관찰되는 대상의 개념들을 모두 포괄한다. 그래서 사진은 이러한 개념 간 특정 관계들을 변주해 내는 하나의 욕망이다.3 황규태가 다른 예술 매체와 비교해 기술 환경의 변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사진을 자신의 예술적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가 바첸이 말한 것처럼 사진이 내용이나 형식의 잠재적 확장 가능성을 내포한 고도로 유연한 매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2) <블로우업(Blow up)> 시리즈
황규태의 <블로우업>시리즈는 1960-1970년대에 한국에서 촬영한 흑백사진을 수십년이 지난 후 일부분만을 선택하여 확대하고 인화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Blow up" 은 ‘확대하다’라는 뜻을 가지는데, 이탈리아의 유명 영화감독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가 1966년에 만든 동명의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사진가는 공원에서 연인처럼 보이는 한 쌍을 숨어서 촬영한 후, 그 사진을 인화했는데 거기서 이상한 부분을 발견하고 그 부분을 확대해서 보다가 우연히 살인사건의 중요한 단서를 찾게 된다. 카메라가 포착한 현실의 장면 속에서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없던 것을 발견하게 되는 이러한 과정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가려진 진실의 존재와 현실의 전혀 다른 차원을 경험하는 행위와 연계된다. 황규태 역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카메라 장치로만 매개되는 새로운 현실을 확대된 이미지에서 마주하도록 한다.
<블로우업> 시리즈는 여러 번의 전시에서 서로 다른 양상을 보였다. 1981년 아트 선재에서 개최된 <황규태 Contemporary Photography>전에서 처음으로 이 시리즈가 보여졌는데, 그는 1965년 이전 찍은 사진을 디지털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이미지의 일부만을 크게 확대하거나 초점을 흐릿하게 하는 방식으로 적극적인 변용을 가했다. 그가 나름의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확대할 부분을 정하지 않는 듯하지만 주요 피사체의 특성을 두드러지게 하며 강조했다. 여기서 그는 일상적 순간에 표출되는 관계와 의미의 불안감과 모호함 등을 표현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사진에 가능한 해석과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했다.
2016년 한미미술관에서 개최된 <블로우업 아메리카(bLow UP aMeriKa)>전에는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 촬영했던 흑백사진들을 디지털로 변환한 후 재작업한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여기서 그는 1960, 70년대 미국에서 비트 세대와 히피 문화의 등장과 시민운동 및 페미니즘 운동의 부상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여러 계층의 갈등 양상이 표면화되고 혼란이 가중된 미국 사회와 다원화된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블로우업 기법을 활용했다.
그가 <블로우업> 시리즈에서 이미지의 일부분을 선택하여 특정 요소를 확대하는 작업 과정은 사진의 입자를 인지하게 하는데, 이후 디지털 이미지의 단위요소인 픽셀에 주목한 시리즈와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황규태의 경우, 서로 다른 시리즈의 작업들이 시기적으로 중첩되고 상당 기간 병렬적으로 진행되며 작업 방식 또한 혼용되는 특성을 보인다. 90년대 이후의 작업은 픽셀에 주목하며 디지털 이미지 메이킹의 조형적 놀이로 당당히 나아갔고 이런 유희적 특성은 인공적이며 팝적인 색채가 강한 컬러 사용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3) <픽셀> 시리즈
1990년대 초반, 디지털 기술은 사진 분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윌리엄 미첼(William Mitchell)의 ‘포스트-프로덕션(post-production)’, 데이비드 토마스(David Tomas)의 ‘비평 행위(act of criticism)’, 그 외에도 ‘하이퍼-사진(hyper-photography)’, ‘포스트-사진(post-photography)’과 같은 새로운 용어들이 다수 등장하며 사진의 장에 급격한 변화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디지털 사진은 데이터나 0과1의 코드에 기반한 메타-데이터로부터 창조된다. 그리하여 데이터와 메타 데이터는 미시적 관점에서 디지털 이미지의 본질이 되며 물리적, 화학적 처리 과정을 거치는 아날로그 사진과는 전혀 다른 특성을 나타낸다.
물리학자 중에는 세상의 입자들 밑바닥에는 입자가 아닌 정보가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니까 과거 물리학자들은 물질과 입자를 연구했고, 최근의 물리학자 중 일부는 물질 너머의 정보에 관심이 있다. 오늘날 사진계를 비롯한 모든 예술계도 물리학계가 겪는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디지털 기술도 사실 물질적이다. 그것은 전기적, 전자적, 전자공학적이다. 다만 디지털 기술이 허락하는 것은 비물질적 세상, 즉 정보의 세상이다. 디지털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디지털 기술이 허락하는 것에 관해 생각한다면, 우리는 비물질적 정보라는 개념을 인정할 수 있다. 정보가 떠다니는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플랫폼에서 사진은 다중감각적(Multi-sensory) 상호작용을 거쳐 경험되며 디지털 이미지의 수사학은 픽셀 기반 변이의 다양한 담론을 창출하고 있다.4 픽셀 기반 변이는 정보공학적이다.
황규태는 어느 날 TV 화면을 루페(loupe), 즉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다가 그 안에서 이전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셀 수 없이 많은, 점같이 보이는 작은 큐브 형태의 픽셀을 마주하게 된다. 이후 TV 화면, 컴퓨터 모니터 등을 클로즈업 촬영하고 크게 확대했는데, 이것이 <픽셀(Pixel)> 시리즈가 시작된 계기이다.
미국 추상 화가인 스텔라(Frank Stella)가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 라는 말을 통해 ‘보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 그 자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사물의 현전(presence)과 관객의 인지를 강조한 미니멀리즘의 입장을 대변했던 것처럼, 작가는 1990년대 초중반 <픽셀> 시리즈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되던 시기에, 픽셀이 디지털 이미지의 기본 구성단위이자 본질임에도 불구하고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음을 자각하며 픽셀의 발현에 관심을 두게 된다.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에 따르면, 모든 기술 이미지는 불연속 입자의 조합에 바탕을 둔 숫자 사유의 표현이며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기술에 의해 처리되고 완성되는 부분이 많아져 선적인 사유에서 우선시되었던 인간의 논리와 주관이 점차 배제된다. 마찬가지로 황규태도 입자 또는 픽셀이 한데 모여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어내는 사진이 불연속적인 점들의 조합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이를 작품 속에 가시화했다.
과학자들은 일찍이 세상이 연속된 것이 아니며 미시계에서 양자는 점프하며 불연속적인 세상을 구성함을 알고 있었다. 시간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은 시간조차 불연속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과학자들과 의학자들조차 뇌를 구성하는 신경계의 섬유가 연속적 망(continuous network)을 형성하며, 그 속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유체가 흐른다는 모형을 제안했는데, 사실상 틀린 이론이다. 1887년, 스페인의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Santiago Ramón y Cajal)은 뇌를 연구하며 동시에 뇌를 그렸다. 과학자일 뿐 아니라 예술가이기도 했던 카할의 뉴런 그림은 상세한 만큼이나 아름답다. 카할은 현미경 앞에 앉아 경이로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뇌에 관한 기존의 연속적 모형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뇌는 별개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현대의 첨단 영상 기술(imaging technique)은 카할을 비롯한 뉴런이론 지지자들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뉴런, 즉 뇌세포들은 연속되어 있지 않으며, 하나의 끝과 다음의 시작 사이에 작은 틈을 남긴다. 이 틈을 시냅스(synapse)라고 하며, 우리의 뇌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에서 이 틈은 매우 중요하다.5
세상의 내밀한 모든 곳에 틈이 존재하지만 예술가들은 오랫동안 세상을 연속적인 것으로 고려했다. 그런데 19세기 프랑스 신인상주의 화가인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는 헬름홀츠(Herman von Helmholtz)와 같은 과학자들의 이론을 수용하여 세상을 불연속적인 것으로 표현했고 이를 위해 그가 도입한 새로운 표현 기법이 점묘법이다. 황규태의 픽셀 작업을 하나의 용어로 평가해야 한다면, 디지털 점묘주의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황규태의 점묘주의는 무엇을 표현하는가? 그는 0과 1이라는 두 종류의 숫자로 인간의 사유와 지각을 코드화한 기계 방식의 사유를 표현한다. TV 화면, 컴퓨터 모니터에서 각양각색의 픽셀을 찾아서 디지털 데이터화한 후 포토샵으로 입자의 크기와 간격을 조정하고 색의 채도와 명도를 바꾸었다. 이후 픽셀의 형태와 배열을 색의 결합을 통해 독특한 이미지 단위 요소로 만들어 반복적으로 드러낸 초기작은 모두 픽셀을 작품의 주제로 표면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작품 <한강 컬렉션>(1993)에서는 높이 떠 있는 태양과 대조를 이루는 한강의 물결을 조각 이미지의 상호 접합에 의해 표현했다.
2000년대 이후 직접 촬영한 필름을 스캔하여 픽셀로 전환한 뒤 다양한 패턴으로 가공하며 이미지를 완성하기도 했는데, “확대하면 나오는 이미지는 내가 딱 마음에 들 때 스톱한다”라는 작가의 말은 무한대로 변형되는 디지털 조작 과정에서 자신의 선택이 결정적인 부분임을 알려준다. 점차 그는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나 TV모니터 화면 등을 확대하여 발견한 다양한 형태와 색상의 픽셀을 한층 적극적으로 변용한다. <TV 픽셀>에서 작가는 TV화면을 확대해서 나타나는 픽셀을 단위요소로 삼아 적절히 변형하고 행과 열로 구성된 2차원 평면 추상을 표현하는데, 각각의 단위요소는 유전자의 DNA를 구성하는 염기인 아데닌, 사이토신, 구아닌, 타이닌처럼 보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비디오 아트 창시자인 백남준의 아날로그 TV주파수의 변형에 따른 특수한 아름다움을 화면 안에서 움직이는 패턴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TV 왕관>(1965년)과의 상관성을 나타낸다.
황규태는 러시아의 화가인 카지미르 말레비치(Kasimir Malevich)로부터 추상 형태에 관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말레비치의 1915년 작품인 <검은 사각형(Tha Black Square)>은 외부 세계의 재현을 거부하며 형상을 완전히 지워낸 추상의 궁극으로서의 절대주의(suprematism)를 표명한 것으로, 극단의 단순성으로 복잡한 물질세계를 벗어나 절대정신의 세계에 안착할 유일한 통로를 제시하고자 했다. 이것은 1960년대에 등장한 미술 사조인 미니멀리즘의 기원이된다. 그런데 흰색과 검정의 단색회화를 제작한 말레비치와는 달리, 황규태는 이미지의 반복과 차이에 의해 변주된 화면을 통해 독특한 시지각적 경험을 제공했다. 이런 면모는 그가 보티첼리(Sandro Boticelli)의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 스텔라의 미니멀리즘 회화 작품,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의 <러브(Love)> 등을 참조한 이미지들을 차용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나는 만들지 않았고, 픽셀들을 선택할 뿐”이라고 말하는 황규태의 작품들에는 대상에 존재했던 흔적이나 기표가 부재한다. 그는 0과 1의 코드에 기반한 디지털 이미지에 기술적 상상을 부여한다. 빌렘 플루서가 사진기와 같은 장치는 인간 혹은 이 장치를 가지고 놀이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조작할 능력을 요구하는데 보기와는 달리 미리 구조화되고 프로그래밍된 자유만을 누리는 한계를 갖기 때문에 사진과 같은 기술 이미지의 프로그래밍과 기능 방식을 꿰뚫어보는 기술적 상상을 통해서만 이미지를 암호화하고 해독할 수 있음을6 지적했는데, 황규태는 이러한 특성을 파고든다고 볼 수 있다.
황규태는 어떤 예술가적 의지를 개입시켜 픽셀들을 선택하는가? 어쩌면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의지가 있었을 수 있다. 다만 작가는 선택이라는 말 이전에, “만들지 않았다”라고 말함으로써, 반낭만주의와 반예술주의의 한 진영에 자신을 의도치 않게 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70년대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여러 영역에서의 예술가들이 자연이나 물리적 세계를 예술적 모티브로 삼아 작품을 제작했다. 음악에서는 프랑스에서 발생해 유럽과 미국 등에 퍼져나간 ‘스펙트럼 음악(la musique spectrale)’이 그런 예다. 스펙트럼 음악가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어떤 소리를 과학적 도구를 이용해 분석함으로써 소리의 (은유적 의미의) 세포를 확인한다. 소리의 여러 지각적 특성의 근원인 이 세포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면 소리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그렇게 인위적으로 어떤 소리를 만들어내는 전자음악가 혹은 컴퓨터음악가, 혹은 스펙트럼 음악가들에게 음악이란 작곡가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 외부의 세계를 관찰한 결과가 된다. 황규태는 픽셀 작업을 통해 현실의 어떤 것을 복제하거나 흉내내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그의 픽셀 작업이 소리의 내면적 구조인 스펙트럼과 같은 것의 등가물일 수는 있다. 스펙트럼 음악가에게 소리의 세포인 배음렬이 중요하다면 황규태의 작업에서는 픽셀이 중요하다. 픽셀을 통해 황규태는 스펙트럼 음악가들이 했던 것처럼 인간의 감각으로 포착되는 연속적인 어떤 것이 아닌, 자연의 심연에 존재하는 프랙탈(fractal) 구조의 이산적 세계에 도달하고자 한다.
2010년대에 황규태는 단위 조형 요소인 픽셀을 포토샵으로 결합하고 재배열하며 미니멀리즘의 단계에서 한층 더 나아간다. 스텔라의 초기 작업이 줄무늬를 사용하며 인간적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더 이상 사물을 모방하는 매체가 아닌 사물 그 자체를 드러내며 순수하게 작품이 되고자 하는 이상을 표현했다면, 이 시기 황규태의 기하학적 추상은 평면 추상을 3차원의 무한한 우주공간으로 전환시킨 듯한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픽셀> 시리즈 중 <파랑 꽃>은 디지털 이미지의 최소 단위 요소인 픽셀 큐브가 연쇄 반응을 일으켜 꽃이라는 형상으로 변모되는 과정을 나열하며, 사물의 형태나 관계가 인지되는 과정을 쌍방향에서 바라보게 한다. 이 작품은 야수파의 대표적인 화가인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작품 <달팽이(The Snail)>을 떠올리게 한다. 마티스는 거대한 색종이 조각을 추상적으로 배열하고 색과 형태 구성의 조화를 통해 달팽이를 표현했다. 황규태의 작품 <Gestalt- 형태심리학>은 색과 형태의 단순한 대비를 통해 부분 혹은 전체가 형상으로 인지되는 게스탈트 심리학의 기본 원리를 표현하고 있다.
매체 미학자인 꾸쇼(Edmond Couchot)에 따르면 예술가는 기술을 통제하고 조작하며 세계에 관한 지각을 변형하는 내밀한 경험, 즉, 기술미학적 (technesthésique) 경험을 한다. 따라서 기술은 단순한 생산 방식이 아닌 지각의 방식이며, 단편적인 재현의 형태들이며 본질적으로 기술미학적 경험은 항상 불확정적이지만, 예술가는 항상 기술적 행위의 주체로 남아있다.7 이런 점에서 본다면, 황규태는 누구보다 먼저 기술의 변모에 주목하며 표현 방식을 다각화하였고 그의 작품은 변화하는 형태의 미학에 연루되어 왔다.
최근에 그는 픽셀의 직선형 구조와 단순한 형태의 반복과 나열에 의한 평면 추상에서 벗어나 형상의 세계를 컬러풀한 색채를 통해 표현하기 시작했다. 작품 <하트(Heart)>는 짝사랑의 은유적인 표현으로 여러 가지 색상과 프랙탈을 연상시키는 세부의 반복적인 변형을 거쳐 완성되었다. 그는 여러 가진 버전의 <하트> 작품을 다수 제작했다. 또한 작품 <컬러 유체역학(Color hydrodynamics)>에서는 가로로 길게 뻗은, 곡선 형태의 화려한 색 띠가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움직임을 선사한다. 그가 이미지를 만드는 즐거움, 유희를 즐기는 극한은 픽셀 인공지능, 픽시(Pixy)에 의한 작품 <pixel Ai, Pixy>를 발표하며 실제 AI가 아닌 작가 자신이 만든 것으로 이미지의 자율적 진화를 천명한 것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황규태는 스스로가 작품의 의미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을 거부하지만 분명 근원적인 발상의 차원에서는 개념적이고 분석적인 미학적 전략을 취한다. 다만 그 전략을 구체화하는 표면상의 수준에서는 자유로운 혹은 즉흥적인 작업 양태를 보인다. 이처럼 그는 기술적 수준과 지식, 문화 차원에 파생된 인식론적 수준의 변형(metamorphosis)을 내재화하며 이미지의 표현 방식에서 새로운 창의성을 드러낸다. 칸딘스키(Wassiley Kandinski)가 존재하는 대상을 재현하는 회화의 틀을 깨고 순수 추상을 통해 조형에 대한 탐구에 전념하듯이, 사진가로 출발한 황규태는 색과 형태의 해방을 꿈꾸며 픽처를 만들고 있다.
1) Fred Ritchin,『After Photography』, W. W. Norton, 2021.
2) <제1회 황규태 컬러사진전>(1973. 1. 18- 1.24, 신문회관 화랑), 팸플릿 참조.
3) Geoffrey Batchen, “Phantasm : Digital Imaging and the Death of Photography”, Aperture, 1991, p. 48.
4) Sarah Kember, "The Virtual Life of Photography", Photographies 1, no. 2, 2008, pp. 175-203.
5) 뇌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마이클 스티븐스, 『지식 기계Knowledge Machine』, 생각의 힘(2023)에서 인용.
6) 비들로 올리버 지음, 양우석 옮김, 『빌렘 플루서의 미디어 철학』, 커뮤니케이션 북스, 2020, pp. 77- 78, p. 92.
7) Edmond Couchot, L'Art Numérique, Paris, Flammarion, 2003, p.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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