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의 시

전시평론

고은사진미술관 기획전

형태의 시

작가
브뤼노 레끼야르
전시 기간
2016/05/14 - 2016/08/10

실패하라, 또 다시 시도하라, 더 나은 실패를 하라

사무엘 베케트1

 

 

카랑시

브뤼노 레끼야르 1947년 벨기에 국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프랑스 북부 도시 마르크--바로얼에서 출생하였으며 20세에 사진작품활동을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하지만, 당시 본인의 성을 사용하지 않고 브뤼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자신의 작품에 친족관계-혈통을 표시하지 말라.2 라고 한 것처럼 그는 1971-1978년 사이의 작품에만 사인을 하였으며 그 이후 오랜 기간 브뤼노라는 이름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는 빠--칼레지역 카랑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세상과는 동 떨어져 “조각상, 동물들, 화분들, 잘 다듬어진 회양목 숲, 일렬로 줄지어 서 있는 나무 숲으로 둘러 싸인 산책로가 있는 공원[…] 그리고 이 산책로들이 주변 초원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짙은 안개 속에서3 지냈다 [Fig. 1]. 8세까지는 홈스쿨링 교육을 받았고, 아라스 소재 생-죠제프(성 요한) 기독교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기숙사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 광활한 군인묘지 한 가운데 박아놓은 듯한 거대한 대성당인 1914-1918년 제 1차 세계대전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트르담 드 로레트4 미사에 참석했다. 이후 벨기에 투르네 근교에 위치한 라머니-친 생-뤽 건축예술전문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세대

1967년 그래픽 아트 커뮤니케이션학과 학생시절 그는 35mm 아사히 팬탁스로 사진에 입문하게 된다5. 이 카메라는 그에게 다른 곳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증명해 보여주는 사물-알리바이6 되었고, 그는 이 때 르포 사진으로 데뷔했다. 그 해 유네스코 등재 인류무형문화유산인 벨기에 뱅슈 카니발과 팡파르 리듬에 춤추는 질(전설상의 인물)의 행렬은 그의 첫 사진 소재가 된다. 1968 7, 그는 분쟁과 논쟁의 도가니인 아비뇽축제로 달려간다. 어느 날 저녁, 리빙 시어터7의 공연취소로 인해 긴급 마련된 아비뇽 축제위원장 쟝 빌라르와 아비뇽축제 체제의 타파를 주장하는 쥴리앙 베크 간의 무대 위 즉흥 논쟁에 참석하게 된다. 그들의 열띤 논쟁을 그는 밀착 인화기법 사진으로 잘 담아내고 있다 [Fig. 2]. 모리스 베자르 역시 이 당시 20세기 발레단과 아비뇽에 공연 중이었다. 작가는 이 극단의 리허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수많은 리듬, 제스처, 움직임8들을 배워나갔다. 그리고 몇몇 극단 무용수들과 친분을 쌓게 된 그는 그들을 따라 브뤼셀까지 동행하게 되고 그 후 3년간 공연 사진작업으로 전문 무용잡지9에 실렸다. 그러나 점차 무대 뒤 모습이나 극단의 일상생활을 표현하기보다는 공연 중에 어둡고 획일한 무대와는 완전히 별개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무용수들의 몸동작을 포착하는 것에 열중하게 된다. , 사진이라는 것은 그에게 삶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잡는다. 내가 하는 유일한 활동임에 불구하고 나 스스로 내가 전문 사진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10 늘 카메라의 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피에르 오베르네라는 젊은 데모 희생자의 장례식행렬에 이어 벌어진 시위현장, 여성해방운동 데모현장, 축제현장 등등을 찾아 거리를 활보하였다. 클로드 레몽-디티봉, 에르베 글로아겐, 리샤르 칼바르, 기 르 끄렉에 의해 설립된 사진전문 에이전시 비바소속 사진가들과 가까워진 그는 영국 와이트섬 록페스티벌을 주제로 한 현장 르포사진-르포타쥬 작업을 같이 할 것을 제안한다 [p. 31, 35]. 하지만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지속적으로 작업하는 것을 원치 않은 그는 곧 본인 사진만 회수하여 세르쥬 우아크닌과 공동작업으로 『세대』라는 작품집에 몰두하게 된다. 이 책 출판작업을 통해 각양 각색의 다른 이미지들을 배열, 배치시키면서도 사진 각자의 특성을 넘어서 사진들간의 상호 연관관계를 형성하도록 하여 이미지들 간의 상호 의미와 관계를 부각시키게 된다.

 

이리하여, 사진 작업 초반부터 브뤼노 레끼야르는 그만의 독창적인 사진언어를 만들어 나가게 되는데 이는 등 돌린 남자의 엄지손가락 제스처 [p. 23] 혹은 벨기에 뱅슈 거리의 깨진 네온사인 [Fig. 3]에서 두드러진다.  이 시점부터 그는 형태와 질감의 적절한 배합을 활용한 (마치 통나무 속 [p. 3] 혹은 비닐봉지를 둘러 쓴 이상한 어린아이 [p. 29]처럼) 작업방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는 늘 새로이 시도하며 실험하는 자세로 끊임없이 사진작업을 이끌어나갔다. 어떤 경우는 사진을 찍은 후 6개월이 넘도록 의도적으로 인화작업을 하지 않고 다른 일에 몰두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거리감을 유지한 채 고찰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점진적으로 르포적 사진작업과는 정반대되는 작업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시퀀스-연속사진/재현

르포르타쥬 사진은 아주 일화적이다 그리고 애매모호하다11

1972-1973년부터 브뤼노 레끼야르는 르포적 사진작업과는 작별을 한다. 조셉 코수스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받은 그는 <재현>이라 명명한 시퀀스-연속사진작업 [p. 37, 39, 43]을 시작한다. 시리즈는 1970대 초의 시기에 획기적인 새로운 작업형태는 아니었으나 베허 부부 혹은 쟝 르 각,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베르트랑 라비에12 같은 설치 예술가들이 지향했던 예술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이 작업방법은 궁극적으로 한 장의 이미지에 다른 여러 순간을 공존하게 함으로써 단사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데 있다. 현재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가의 사진 샘플 프린트 중에는 파리13 14구역에 위치한 그의 작은 아파트 내 일상의 흔적 및 자취와 그 속에서 생활하는 부인 루스의 평범한 하루 하루의 일상생활 모습을 담아낸 이미지 700여 장이 있다. 23평방미터라는 좁은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 그 많은 이미지들은 사진전문잡지인 『크리에이티브 카메라[Fig. 4]의 두 페이지를 장식하였고, 끌로드 노리의 전문 사진 저널 콩트르쥬르 1에 실렸다. 하지만 브뤼노의 시퀀스는 결코 서사적 진술의 형태를 띠지 않는다. 단지 상황을 재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가 설정한 주제들은 직접적으로 일상적인 주변 환경에 관한 것이다 [p. 39]. 멘느대로 가로수들의 보호장치 사진에서 보듯이 장소성의 해체14 작품 속 사마이 하버의 아뜰리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이렇게 그는 엄격한 조형미를 추구하는 그만의 독특한 사진언어를 구축해 나간다. <재현> 시리즈는 대형 화이트종이에 연필로 선을 그어 이미지와 이미지 간의 연관관계를 이끌어내며, 카롤 나가르가 언급하듯이 마치 한 폭의 회화처럼, 배경과 이미지의 경계를 배제하여 조화를 잘 이루면서도 또한 각각의 이미지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것 못지않게 사용된 매체인 종이의 중요성 또한 잘 드러내고 있다.15

 

 

공간/ 표면

장 초첨을 사용하지 않는다, 장 초점은 공간을 축소시킨다.16

브뤼노는 상황의 재현이라는 체계적인 시리즈작업에 국한하지 않고 운전을 하면서 사진 찍기를 시도하는 것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무한한 사진 작업방식에의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추구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차량 앞면 유리의 곡선과 두께는 공간의 혼동을 야기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리 프리들랜더같은 미국 사진작가들은 차량 백미러를 이용하여 포착한 또 다른 이미지를 사진 속에 끌어들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브뤼노는 모든 반사를 배제하고 이미지 중앙부의 검은 프레임만을 고집한다 [Fig. 5, p. 5, 47, 83]. 1973-1975년 사이 그는 여행을 떠나게 되며, 1974년 겨울 스웨덴에서 2개월을 보낸 뒤 유고슬라비아 유니제섬에서 여름을 보내고 그 이듬해는 이탈리아 탐방에 나섰다. 베네치아 석호(潟湖)파도 [p. 61]이미지를 포착하는 이 시점 이후 그는 모든 르포적이거나 사실적인 혹은 뭔가를 표현하고자 의미를 담고 있는 이미지 작업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또한, 시퀀스 시리즈의 원칙은 그의 작업방식에서 더 이상 큰 의미를 갖지 않게 되었다. 그는 1974년 한여름에 포착한 그 유명한 잠수하는 사람 [p. 59]같은 단사진 이미지들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수평선과 평행선을 이루며 일렁이는 파도 한 끝자락에서 마치 하늘과 땅과 바다 사이에 매달려 있는 듯한 한 남자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초고감도 필름을 사용하여 이미지의 입자를 최대한 확대시키는 것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해체하고 사진 구도를 소격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런 작업방식의 대표적인 사진 몇 가지를 예로 들자면, 보트니아 만의 쇄빙선 [p. 67], 들에 홀로 남겨진 암탉17 [p. 87]등이 있다. 또한, 브뤼노는 쇼파에 잠든 고양이 작품에서처럼 근접촬영으로 형태의 탐구를 고집하면서 고양이의 털가죽과 플라스틱 재질 쇼파의 질감을 대조적으로 드러내 소재의 상반되는 이미지를 잘 부각시키고 있다 [Fig. 6]. 그의 작품은 쟝-끌로드 르마니 프랑스 국립도서관 관장 주관으로 에디 클루고브스키, 베르나르 플루쏘, 베르나르 데캉 등의 사진작가들과 함께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진갤러리에서 전시되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프랑스 현대 사진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프랑스 현대사진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카랑시-파리-베르사이유

나는 푸른 산책로 사이 사잇길을 뛰어다니고 산책하며 운하를 따라 거닐다 끝없이 흐르는 물들을 한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에는 나에게 공간이 더 넓게 펼쳐져 보였다. 나는 나무 숲 아래 숨기도 하다가 화분들과 석상 주위를 맴돌며 뛰어 놀았으며 기하학적으로 잘 가꾸어 다듬어 꾸며진 입체공간 속에서 장난치다 되돌아 서기도18

그의 사진 속에서 인물들은 점차 사라져 가고 그 대신 다양한 공간/장소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특별한 매력과 강한 인상으로 다가오는 어린 시절 뛰어 놀았던 공원, 프랑스 북부 군인묘지, 그가 정착한 파리 거처 근처에 위치한 당페르-로슈로광장의 벨포르 사자상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장소들은 그에게는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공간이면서, 사진에서의 구도와 사선으로 드러나는 원근법의 관계를 명확히 정의하는 방식으로 사진작업을 가능케 한 공간이기도 하다. 사선의 동적 요소들은 사실성에서 벗어나는 이 내적 구조체계를 교란시키지만 공간의 모호성은 오히려 긴장감, 불안감, 강력한 힘을 표출한다. 이 기간의 사진 작업들은 그가 공간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제기한 후 얻어낸 최종 결과물인 1977년작 베르사이유 공원 [Fig. 7, p, 91-95] 시리즈가 탄생하기 위한 전초 탐색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브뤼노는 프랑스를 방문한 외국인친구를 동행하기 위해 난생 처음으로 한 여름의 베르사이유를 방문하게 되었다. 베르사이유 공원은 그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사진작업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관광객들이 넘쳐났다. 그는 쟝-끌로드 르마니,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 관장의 권유로 파리 발롸가에 위치한 국립카메라기록보관소19에서 으젠느 앗제의 사진작품들을 처음 접했다. 으젠느 앗제 작품 사본 3점을 주문한 이후로 그의 작업실에는 앗제 사진 3점이 늘 집게에 꽂혀 있었다.  1977 10월에서 12월 사이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텅 빈 베르사이유 공원 산책로를 브뤼노는 다시 찾았다. 이후 10여차례 베르사이유를 방문한 그는 베르사이유 궁전에는 아예 발도 들여 놓지 않았으며 인기척 하나 없는 텅 빈 공원에서 무려 3,500여점의 사진을 찍는다. 이 시리즈 사진 속 공간들은 산책로와 분수들이 자아내는 사선들로 시작하여 잘 손질된 회양목 울타리와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치되어있는 듯한 흉상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베르사이유 시리즈 이후 브뤼노는 사진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였으며 점점 회화작업에 매료되어 간다. 이후 2년간 사진활동을 지속한 그는 특히 파리 이미지만 담아냈으며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은 채 더 많은 자유로움 속에서 마치 산책 후 노트를 하는 느낌으로, […] 그러나 그 어떠한 열의나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은 채20그렇게 300여 필름을 남긴다. 하지만 이 이미지들은 그대로 보관만 한 채 그 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인화가 되었다.

 

 

회화의 재인식

작업방식에서 아주 엄격하고 까다로운 브뤼노는 단지 본인만을 위한 취미사진만 찍고 전문 작가로서의 활동 중단을 선언하며 전통적인 사진 유통계21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했다. 작업중단 선언 후 그의 작품들은 급속도로 빠르게 전시에 초청되었고, 1976년 아를르 국제 사진전에서 심사위원 최고상과 비평가상 2위를 수여했다. 1975 1, 버지니아 쟈브리스키는 파리시내에 갤러리 오픈 기념 기획전시로 기존 전통프로그램과 병행하여 프랑스 사진작가 존 바토, 브뤼노 레끼야르 및 리 프리들랜더, 찰스 하버트 같은 미국 사진작가 그리고 창작사진 지지자들 몇몇을 소개한다.

 

1978-1979년 사이 국립현대예술박물관, 조르쥬 퐁피두 센터, 쟈브리스키 파리 갤러리22와 뉴욕 갤러리23 등지에서 많은 전시가 열렸고, 이로 인해 브뤼노는 신세대 프랑스 현대사진작가의 선두에 올라서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무렵 버지니아 쟈브리스키는 신진작가들에 목말라하는 미국관객들에게 더 쉽게 다가가고자 브뤼노에게 작가 본명 사용을 요구하였다.

 

1979년 아비뇽축제에 초청된 그는 가족 사진촬영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런 유형의 작업은 그에겐 전혀 흥미가 없었으며 사진의 본질이란 행복한 스냅들24이었다 것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형식주의와 탐미주의의 매너리즘 속에 빠져 사진 본질과는 점점 멀어지는 작업방식에 회의를 느끼고 고민에 휩싸였다. 몇 달 뒤 그는 사진을 포기하고 그림 그리기에 매진한다. 기존에 완성한 것보다 못한 것을 반복하는 행위를 하느니 다른 무언가를 시도하며 차라리 아뜰리에에서 혼자 남는 편이 더 낫겠다.25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이 무렵 10여 년간의 작업들은 그 이후 로베르 델피르에 의해 프랑스 국립사진센터에서 전시되었다.

 

 

 

기증

1992 8월 말 브뤼노 레끼야르는 본인 작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방치되는 것을 막고자 1967-1979년대26 사진작품 전부를 기증하는 것을 정부에 제안하였다. 그리하여 1993 1 11일 행정적인 기증절차가 마무리되었다. 이후 그는 본인 사진 필름을 재정리하고 작품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이 목록들은 사진문화유산자료 보급과 홍보를 위해 프랑스 사진연합회에 전달되었다.

 

이 기증시점에 즈음하여 프랑스문화부 예산지원 아래 15명의 프랑스 사진대가들의 작품 보존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해당 작가로는 앙드레 케르테츠, 다니엘 부디네 같은 작가들은 물론, 1970년대 컬러사진 작업을 한 선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브뤼노 레끼야르가 현대사진작가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사진연합회는 공원 속 겨울여행 작업 착수 초반에 많은 영감을 준 으젠느 앗제, 미국의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작품들과 함께 그의 베르사이유 작업으로 프랑스 국립문화재유적센터에서 전시를 개최하였다. 2006년에는 PC출판사가 베자르 발레단의 모습을 담은 그의 초창기 사진들로  『무용』이라는 작품집을 출간한다 [Fig. 8]. 2005년부터 프랑스 국립 건축 사진 문화유산 미디어센터에 기증자료 목록뿐 아니라 그의 모든 자료가 소장 관리되고 있다. 필름 72,000, 칼라 슬라이드 2,000, 전시작품 300 그리고 브뤼노 레끼야르 작품 초창기 시절의 간행물 르포사진 대부분과 그의 테스트 프린트 4,000 등이다.

 

최근 8년간, 프랑스 국립 건축 사진 문화유산 미디어센터그의 긴밀한 협조 하에 길을 걸으면서 포착한 찰나의 인상에 영원성을 부여하고자27 작업한 사진들의 목록을 정리 재구성하는 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의 최근 작품들이 세상의 빛을 받고 연구되어지기를 바라면서.

 

                                                                                              

1 최악을 향하여, Minuit 출판사, 파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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