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r Port City, 조각난 의식의 풍경.
김신욱의 <Air Port City>는 주인공 없는 영화와 같다. 공항이 보이지만 딱히 공항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비행기도 등장하지만 뜬금없이 근처 주택가 상공이나 날아다닐 뿐이다. 작업조차도 공항 내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엄밀히 얘기하자면, 공항 주변에서 이루어졌기에 그 흔한 터미널의 모습이나 공항 카페에 앉아있는 외로운 여행객의 모습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공항 담장 넘어 덩그러니 남아 있는 집 한 채, 그리고 그 뒤로 날아가는 비행기 혹은 공항 근처 공터에서 엉뚱하게 웨딩 영상을 찍고 있는 커플 등등……. 김 신욱은 끊임없이 공항의 외곽을 배회하며, 주변의 낯선 풍경들과 그 안에서 부유하는 인물들의 어정쩡한 모습들을 담아낸다. 때문에 수많은 조연들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사건들이 펼쳐지지만, 정작 주인공이 만들어내는 극적인 전개가 없는 지루한 영화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런 지루한 주변부의 모습들이 아주 흥미롭게 읽혀진다. 공항이 가지고 있는 장소성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런던 시내에서 히드로 공항까지…….
가난한 유학생 신분이었던, 김신욱은 2010년부터 공항 택시를 몰며 무수한 시간을 반복적으로 오갔다 한다. 그리고 2013년부터 본격적인 사진가의 눈으로 작업을 시작했으니, 런던이라는 거대 도시와 그 외곽에 위치한 공항 사이의 경계 그리고 풍경의 변화가 세세하게 읽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의하면, 공항과 주변의 경계는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고 한다. 1946년에 개항해서 71년째 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히드로 공항이 지금도 슬금슬금 몸집을 불려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신욱은 히드로 공항을 살아있는 생물에 비유하며, 마치 히드라처럼 끊임없이 주변부를 잠식해 간다고 표현했다. 이는 현대의 수많은 공공시설들이 그러하듯, 초기 예상보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항 부지와 관련 시설물들을 늘려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결국 공항 주변에는 기존의 공간과 확장된 공간들이 어색하게 공존하며 낯선 풍경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가 주목한 것은 공항의 물리적인 경계나 지형학적 풍경이 아니라 그러한 변화 내에서 서서히 균열되고 조각나는 ‘의식의 풍경’ 이다.
분열된 의식은 뚜렷한 외상을 드러내지 않는다. 때문에 이를 감지한 사진가는 항시 모호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이미 70년대 뉴 컬러 작가들이 보여준 일상의 부조리함(Absurdity)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고, 최근에는 알렉 소스(Alec Soth)의 미시시피 작업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소스의 작업을 보면, 의식의 외상이 결코 선형적인 구조(Linear Structure)가 아니고 기승전결이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런 면에서 주인공과 굵직한 내러티브가 없는 김신욱의 모호한 태도는 나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김신욱은 그의 작업 노트에서 ‘낯선’ 풍경이라는 단어를 빈번하게 사용한다. 어쩌면 사진가가 ‘낯 설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아직도 작업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한국의 낯익은 풍경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낯선 <Air Port City>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길 바란다.
계원예술대학교 사진예술학과 교수 오형근
꿈꾸는 섬
나에게는 제주도하면 1980년대가 떠오른다. 박정근이 나열한 입도조의 여러 세대 중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신혼여행지로서 최고의 장소였던 시대가 있었다. 그렇게 여유가 없었던 시대에 요즈음 흔히 나가는 해외여행은 부유층이나 가능했던 것이었고 형편이 넉넉찮은 서민들에게는 제주도란 곳은 언감생심이자 로망이었다. 아마 이 때의 제주도는 본토를 떠나 비행기로 처음 경험해보는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었으니까. 이 시기에는 워낙 신혼여행객이 많다 보니 호텔의 모든 창문이 똑같은 시간대에 불이 켜지고 똑같은 시간에 꺼진다는 재미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그 후, 90년대에는 괌이나 발리가 유행했었고 요즘은 세계 여러 곳의 오지를 찾아 떠나는 신혼여행객도 심심찮게 있을 정도로 해외여행이 흔한 시대가 되었다. 이런 연유로 제주도는 입도조의 분류에는 없지만, ‘신혼여행객의 시대‘가 십 여 년 정도 있었으니 특별한 곳이긴 하다. 허나, 요즈음의 제주도는 여러 면으로 급변하고 있다. 박정근 작가가 기본적인 상황들을 열거했듯이 입도조 3세대의 일이다.
박정근은 특정 세대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어떻게 재현하고 그것을 표현하는가에 중점을 둔다. 그는 그 자신이 노마드적 삶을 즐기는 듯 보인다. 그는 일찍이 해외여행을 자유로이 다녔고, 언제나 구름처럼 단지 덧없이 떠다니기만 하지는 않아도, 그 자신이 정주인(靜主人)보다는 방랑자에 가깝게 느껴진다.
몇 해 전에, 제주도의 해녀들을 다룬 <잠녀>라는 제목으로 전시와 더불어 사진집을 낸 적이 있다. 그만의 표현은 앞서 많은 작가들에게서 작업되어 온 해녀들의 역경이나 삶의 이야기 보다는, 그만의 관점으로 이미지화된 ‘물옷‘과 ‘물숨‘에 투영되었다. 해녀들의 오래된 잠수복과 그들의 오래된 숨을 함축되고 독특하게 그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렇듯, 이번의 박정근이 하고자 하는 것도 ‘다큐의 순수 미술화‘ 라는 기조를 이어 진행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객관성과 사실성을 넘어 지표(index)의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이 노마드적 삶을 거리감 없이 지냈듯,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본인의 공간적 기억과 경험을 통한 자화상일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입도조의 삶이라면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그들의 이질적이고 어색함이 어딘가 묻어있을 것이고 또 그들의 시선으로 보는 그 땅이 정주인이 아니었기에 보게 되는 낮 선 모습이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시각적 탐구 속에서 박정근 만의 또 다른 면을 기대해 본다.
사진작가 이갑철
불온(不穩)한 위기
이재욱 작가의 작품 속에서 보여 지는 일상은 나른한 불온함을 머금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는 마치 세상을 담아내는 모니터를 통해 여러 지역을 순회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 이유는 작가가 유럽, 아시아의 몇 지역을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선택하였고, 이를 통해 범주화된 사진 찍기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이하게 이 지역들을 ‘국가’라는 범위로 선택되었다. 그리고 작가는 그 일정한 문화, 경제 지역과 특정 영토 안에 구성되어 있는 사람들의 일상의 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이들에게 국가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가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최고 통치권을 가진 국가는 자국민의 사회적 목표와 욕구를 제도를 통해 효율적으로 실현해야 하지만, 복잡한 국제 관계와 자본과 경제의 이동, 인종, 계층 등 많은 갈등들로 인해 대부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이재욱 작가는 바로 이러한 대 전제들이 구성되어 있는 관계들이 균열을 일으킬 때, 맞이할 수밖에 없는 개인들의 무기력함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작가가 들여다본 국가는 크게 4개의 지역이다. 바로 터키, 독일, 그리스, 한국인데, 이 지역들의 공통점은 모두 경제파탄, 테러, 인종차별, 민주화 등의 문제로 인해 사회적으로 커다란 위기와 갈등 상황을 겪으며 국제 사회의 주목을 끌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 중에서 독일과 한국은 작가의 생활 기반이며, 일상적 삶과 밀접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이 주제에 대한 고민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내밀한 개인성에 근거한다는 점에 신뢰를 주고 있다. 독일의 경우는 난민 문제와 테러에 직면한 유럽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사실 이러한 부분은 개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이 안에서 복잡하게 움직이는 부의 불평등, 편견을 기반한 인종차별 등의 이데올로기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위기는 불안 딜레마를 야기 시키며, 사회 구성원들의 분열을 불러일으킨다. 즉, 개인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황과 고통에 일상을 잠식당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담아내는 이재욱의 작품 촬영 방식은 순간을 잡아내는 스냅 샷이지만, 마치 설치 작업과도 같은 진행으로 긴 시간의 계획 아래 이루어진다. 오랜 시간을 들여, 작가가 덫처럼 설치해둔 장소에 실제 그 곳의 상황에 엮여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포착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실제 표정을 잡아내기 위하여, 무선 릴리즈를 통해 카메라에 담아내는 방식을 이용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표정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나른한 무기력함을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현실적인 모습이라는 모순을 실현한다. 다만 같이 배치되는 풍경 사진과 인물 사진의 병치는 증폭되어야 할 시너지 효과가 이미지와 내러티브에서 강한 긴장감을 도출하고 이를 통해 더 강렬한 시각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대한 작업도, 지난 촛불 시위의 결과와 별개로 여전히 거리에서는 세대간, 혹은 정치적 지향점과 관련한 대립 상황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서도 작가는 사건의 원인이나 결과, 상황보다는 그로 인해 보여 지는 개인의 모습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기존의 시각은 이러한 경우, 개인들은 투사(鬪士)나 피해자로 많이 묘사되었다. 그러나 극단적인 분열의 상황인 한국의 시위장면에서도 이재욱이 포착한 모습은 한 귀퉁이에서 태극기를 내린 무기력한 모습들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개개인들이 모여 거대한 집단 정체성으로 표기되는 어느 영토의 주인인 국민이 마주하는 현실은, 사실은 그들이 주인이라는 권리를 인정하는 국가가 만들어 내는 불온한 위기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 때문에 개개인은 매우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진실한 말 걸기이기도 하고, 본질을 언급하는 표제어이기도 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시니어 큐레이터 강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