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춘만의 카메라가 보여주는 부산 산업의 생태계
고은사진미술관이 1년간 부산을 기록하는 <부산 프로젝트>의 작가로 조춘만을 선정했을 때 그는 평소 산업현장 사진가답게 부산의 산업을 찍기로 했다. 그런데 울산에 살며 울산의 중공업 광경을 사진 찍어온 조춘만이 부산의 산업과 항만 등에 접근했을 때 그는 몇 가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가 오랜 세월 자라며 사진을 찍어온 울산과 달리 부산은 그의 홈그라운드가 아니었다. 울산과 부산은 산업이 성장한 역사도, 지리적 조건도, 산업구조도, 경관도 달랐다. 한 마디로 울산과 부산은 모든 면에서 달랐다. 울산은 중화학공업의 도시, 부산은 경공업과 관광업의 도시였다. 사진으로 찍을 수 있는 대상 자체가 달랐다. 그리고 사진의 시선도 달라져야 했다. 그래서 울산에 익은 눈으로 부산을 기록한다는 것은 조춘만에게는 챌린지이기도 했다. 조춘만이 그 챌린지를 어떻게 다루면서 시선의 변화를 이루었는지, 그 결과 부산은 그의 사진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사진가가 대상을 어떻게 찍었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진 찍는 지역이 변하면서 대상의 특성도 변하고 따라서 그의 시선도 변하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그것은 마치 사진가와 대상, 이미지가 하나의 기계처럼 결합하여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이 경우 사진은 현실의 반영도 아니고 충실한 기록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사진은 조춘만―울산―중공업―부산―경공업으로 이어지는 기계복합체의 한 부속으로서 기능한다. 결국 이 글은 사진이라는 기계가 울산에서 부산으로 무대를 바꾸면서 어떻게 다른 기계들과 결합하여 다른 작동방식을 취하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울산의 조춘만
조춘만은 달성에서 태어났지만 성장은 울산에서 했다. 1970년대부터 중화학 육성지역으로 지정된 울산의 성장과 조춘만의 성장은 평행한 궤적을 그리며 같이 진행해온 역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울산의 중공업 공장에서 일 하면서 잔뼈가 굵었고 성인이 돼서는 그 공장의 육중한 기계미에 매료되어 사진을 찍게 됐다. 노동인권의 개념도 없던 1970년대말 중공업의 현장에서 그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고생을 많이 했을 텐데도 나중에 그 현장의 기계들이 미적인 것으로 다가와 사진 찍게 됐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그의 혈관에는 중공업의 피가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사진 찍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 대상을 관조하고 분석하는 시선이 아니라 대상이 너무나 맛있어서 집어삼키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표정이다. 그는 나방이가 불에 뛰어들 듯 광경에 뛰어든다. 그에게 사진은 산업의 기록도 아니고 역사도 아니다. 사진은 한 인간이 세포의 단위에서부터 강철과 콘크리트의 분자들과 삼투하고 동화되는 신기한 작용의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의 내용과 형식도 철저히 울산의 산업적 특성에 맞춰서 발전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물론 그의 활동범위가 울산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고 여수, 광양 등 중공업의 현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사진을 찍지만 울산의 중공업 풍경에 맞춰 형성된 그의 시선은 다른 지역에서도 울산다운 광경을 찾는다. 그것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초현실적인 스케일과 설비들의 어지러운 디테일이 정글처럼 얽혀 있는 중공업과 화학공업이 만들어 내는 광경이다. 결국 조춘만의 울산은 한 군데가 아니다. 그는 심지어 외국에서도 울산을 찾는다. 지난 해 독일 푈클링엔 제철소에서도 그는 울산다운 광경을 찾았다. 푈클링엔 제철소는 지금은 문을 닫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다른 의미를 갖는 장소가 됐지만 그의 시선은 대지를 우뚝 딛고 서서 큰 스케일의 공업생산력을 발휘하는 현장에 꽂혀 있다.
울산 시내를 다녀보면 산업의 스케일이 다른 지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조선소의 선박 블록들은 웬만한 건물보다 훨씬 높고 크다. 중화학공장들의 설비와 굴뚝들을 멀리서 보면 하나의 숲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빽빽하다. 울산은 한 마디로 건축적인 높이에서부터 옆으로 펼쳐진 수평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원에 걸쳐서 중화학공업이 지배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조춘만의 사진도 그런 공간감에 철저히 맞춰져 있다. 그의 사진을 여러 사진들의 분류 속에 위치시킨다면 건축사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조선소의 선박 블록들은 엄청난 건축물들이며 (배를 만든다고 하지 않고 짓는다고 하고 영어로도 ship building이라고 하는 것은 배가 하나의 건축물임을 의미한다) 중화학 공장들도 다들 엄청난 건축물들이다. 그래서 그는 초점 거리가 긴 렌즈를 써서 형태의 왜곡이 없도록, 건축물의 수직선은 절대로 기울지 않도록 철저히 객관적으로, 측정하듯이 사진 찍는다. 그런 결과로 나온 사진들은 중공업이 대지를 딛고 우뚝 선 엄청난 존재감이다. 그리고 복잡한 설비들은 카메라에서부터 멀리 있고 초점 거리가 긴 렌즈로 찍었기 때문에 원근감이 대폭 압축되어 완전히 한 덩어리로 뒤엉켜 보인다. 그 결과로 울산의 산업경관은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정글, 혹은 ‘앙코르와트 같이’ (이영준 “조춘만의 산업사진이 미래에 필요하게 될 이유” 『조춘만의 중공업』 워크룸프레스, 2014) 보인다. 그 사진들은 울산의 산업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지만 누구도 그 속속들이 들어찬 다양한 산업시설물들의 종류와 원리들, 기능들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숲으로 다가온다. 조춘만의 사진에서는 울산의 공장들은 지리산에 수도 없이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처럼 밀도 높은 산업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지리산에 가면 굳이 모든 나무의 종류를 알지 못해도 숲이라는 전체가 하나의 독특한 세계로 다가오듯이, 울산은 조춘만의 사진 속에서 독특한 세계로 다가온다. 아니, 멀어진다.
부산의 조춘만
그런 조춘만이 부산에 왔다. 사실 부산은 울산 같이 중화학공업이 발달한 도시는 아니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부산 산업의 구조도 많이 바뀌어 요즘은 영화가 부산의 주된 산업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제이며, 부산에서는 작년 한 해에 400편의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부산은 영화의 메카가 됐다. 1970년대부터 중화학 육성지역으로 지정된 울산과는 달리, 부산은 경공업 중심의 도시가 됐고, 무엇보다도 항만도시로 성장해 왔다. 부산의 산업구조를 분석하는 논문이나 잡지기사 마다 빠지지 않는 말은 “1970년대 정부의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울산·창원·포항·구미 등은 급속하게 성장한 반면 부산은 경공업 위주의 생산구조 유지”하는 바람에 성장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황영순, “IT융합, 부산 산업 재도약의 핵심” BDI 정책포커스, 2011.1, 1-12, 부산발전연구원(Busan Development Institute), 최종열, “산업구조 혁신과 동북아 경제허브 전략으로” 부산발전포럼, (172), 10-19) 부산 경제는 전체적으로 부산의 인구 규모에 비해 낮고 약하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이다. 그런 사정은 여러 가지 수치로 잘 나타난다. 2010년을 기준으로 보면 부산의 경제규모(GRDP)의 전국비중은 5.0%로서 인구의 전국비중(7.1%)에 미치지 못한다. 부산의 수출은 1973년에는 전국비중 29.2%로 국내최대였으나 계속 하락해 2010년에는 전국비중이 2.7%로 떨어졌다. 부산지역 제조업의 전국 생산비중은 1967년 20.3%로 최고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2009년에는 전국의 3.2%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 와중에 부산의 주력 제조업은 생활소재형에서 가공조립형으로 전환됐고, 가죽·가방·신발 산업의 특화도가 2.71로 가장 높다. 전국 100대기업 중 부산에 있는 것은 르노삼성자동차가 유일할 정도로 부산의 산업적 토대는 취약하다. 부산에 울산 같은 중공업 공장이 없고 주로 신발, 섬유 등 경공업 중심이 되다 보니 조춘만의 카메라는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적잖이 고민을 하게 됐다.
울산과 부산의 산업풍경의 차이는 우선 인터넷 지도상에서 충격적으로 나타난다. 울산의 대부분의 공업지역은 지도상에서 흐리게 블러(blur) 처리되어 디테일을 볼 수 없다. 울산에는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 울산석유화학단지, 온산국가산업단지 같이 국가의 산업을 책임지고 있는 광범위한 국가적 스케일의 산업단지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같이 중요한 기업들의 공장이 있다. 이들 단지와 공장들은 모두 블러 처리돼 있어서 어떤 디테일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시선 금지의 지역들이 조춘만의 카메라가 항상 향하고 있는 곳들이다. 조춘만은 마치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초현실적인 스케일감을 자랑하며 기이한 불빛을 뿜어내는 그 경관을 찍기 위해 중공업 공장이 보이는 곳은 어디든지 찾아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만다. 그에 반해 부산의 지도에는 블러 처리된 곳이 거의 없다. 국가적 스케일의 산업단지나 공장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국가보안시설이며 세계5위를 자랑하는 부산항 신항만도 블러 처리돼 있지 않다. 사상공단, 녹산지구 국가산업단지도 블러 처리돼 있지 않으며 신항만에 비하면 규모나 중요성에서 비교가 안 되는 감천항과 영도의 한진중공업 조선소만이 블러 처리돼 있을 뿐이다. 그것은 조춘만이 사진 찍을 만한 스펙터클이 없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제일 큰 컨테이너선과 시추선, LNG운반선, FPSO 등 세계 최고의 조선기술을 뽐내는 선박들이 줄줄이 건조되고 있는 울산의 현장들과 달리 부산의 항만에서는 세계적인 규모의 선박이나 해양구조물은 볼 수 없고 녹슨 피더선(연안을 다니는 작은 규모의 컨테이너선)이나 어선, 여객선 등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사진도 자연스럽게 대규모의 스펙터클 보다는 디테일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게 되고 공장의 외부 보다는 내부로 들어가게 됐다. 그 덕에 그는 울산에서는 할 수 없는 관찰을 하게 된다. 울산에서 사진 찍을 때는 워낙 거대한 현장들을 멀리서 찍었기 때문에 공장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은 찍을 수 없었다.
조춘만이 사진 찍은 산업체들을 살펴보면 그의 카메라의 초점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조선소의 경우 영도의 한진중공업은 촬영을 위한 접근이 불가능할뿐더러 주위에 올라가서 조선소를 관찰할 수 있는 산이 없다. 영도의 봉래산이 있지만 시야가 트이는 곳이 없어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그래서 그가 찍은 곳은 중소업체인 대선조선이다. 1945년 대선철공소로 시작한 이 조선소는 컨테이너 3000개 미만을 싣는 피더(feeder; 대양으로 나가지 않고 연안을 다니며 컨테이너를 옮겨주는 작은 배), 재화중량 82,000톤 미만의 벌크선 등을 생산하는 곳이다. 여기서 찍은 사진들의 의미는 울산에서 찍은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울산의 조선소들이 최첨단의 글로벌 조선산업의 전진기지라면 대선조선은 갯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부산이라는 도시의 애환이 담겨 있는 곳으로 보인다. 사진에 나오는 배들도 소규모라서 더 그렇다. 대선조선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부산에서 울산 같은 광경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시점의 변화--산업풍경의 디테일
조춘만은 그 대신 부산에서 완전히 다른 것을 찾았다. 그것은 산업의 속모습이다. 그는 동일고무벨트(DRB), 동성화학, 태웅철강 등 일반인에게 각인된 유명 대기업은 아니지만 해당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독자적인 기술개발을 하고 있는 산업체의 공장 속을 찍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사진들은 울산에서 찍은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 실내에 있는 공장설비들도 땅을 디디고 서서 중량을 버텨야 한다는 점에서는 건축물의 특성을 가지고 있고, 알 수 없는 설비들이 얽혀 있다는 점에서는 거대 조선소의 해양구조물과 비슷하게 난해한 면이 있지만 부산의 공장에서 조춘만은 설비들의 작동을 찍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산업의 생태계에 바싹 다가갔다. 그는 부산의 다양한 공장들을 다니며 다양한 업종, 다양한 기술의 현장을 관찰했다.
아무래도 부산 하면 떠오르는 것은 신발산업이다. 신발산업의 성장의 배후에는 고무산업이 버티고 있다. 두 산업의 성장추이를 보면 신발과 고무산업이 부산의 대표산업이 된 이력이 보인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수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부산공업의 주종업종은 고무공업으로 전국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신발류는 1958년에 시 전체 수출액의 10.5%, 1975년에는 13.4%, 1982년에는 24.2%를 계속적으로 증가하여 1987년에는 무려 35.8%에 이른다. 고용면에 있어서나 생산액에 있어 화학공업은 1980년 이후 부산공업의 주된 공업부문이며 신발류가 이를 선도하고 있다.” (출처: <부산의 역사> 중 공업편 https://www.busan.go.kr/bhmohistory14) 조춘만은 고무와 관련된 업체 두 곳을 방문하여 사진 찍게 되는데 하나는 동일고무벨트이고 또 하나는 동성화학이다. 동일고무벨트는 한국에서 가장 큰 고무벨트 생산업체로서 자동차에서부터 발전소에 이르는 온갖 다양한 기계설비에 들어가는 고무벨트를 만들고 있다. 종류도 산업용 벨트, 자동차용 벨트, 농기용 벨트에서부터 육각 브이벨트, 원형 벨트, 오픈 엔드 브이벨트, 경부하용 브이벨트, 변속 벨트 등 다양한 형태의 벨트들을 망라하고 있다. 그 공장은 다양한 종류의 벨트들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벨트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조춘만의 카메라는 그런 공장에서 거대한 스펙터클 대신 전문화된 벨트를 만들어내는 설비들의 생태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수가락을 연상시키는 고무벨트들이 줄줄이 걸려 있는 장면에서부터(IK197941_금사동) 고무벨트가 큐어링 프레스(curing press)에서 열과 압력을 받으며 숙성되는 장면은(IK180363_금사동) 왕성하게 생산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의 열과 소음, 냄새를 전달하는 듯하다.
동성화학은 신발산업이 발달한 부산답게 신발창용 폴리우레탄 수지, 합성피혁 원료(PU resin) 등을 개발하고 만드는 화학기업이다. 이 기업의 공장에서 조춘만이 찍은 것은 스펙터클이 아니다. 우선 이 공장에는 대규모의 스펙터클은 없다. 엄청난 길이를 자랑하며 시야를 뒤덮는 각종 파이프가 가득 찬 울산의 중화학 공장과는 생산품목도, 규모도 다르다. 부산 산업의 중요품목 중의 하나인 신발의 원료가 생산되는 곳이라는 점에서 동성화학은 부산이라는 도시의 특성을 잘 함축하고 있다. (IK186819_신평동) 부품을 조립하고 가공하는 과정이 눈에 보이는 기계공업과는 달리, 화학공업의 공정은 전부 파이프 안에서 일어난다. 공정을 확인하는 방법은 센서를 통해 전달되는 데이터를 보는 것 밖에는 없다. 따라서 화학공업은 가시적인 산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춘만의 사진에 나타난 화학공업은 보는 이를 궁금하게 한다. 저 파이프 안으로 무슨 액체가 지나는 걸까, 무슨 냄새가 날까, 산성일까 알칼리성일까, 부식성은? 폭발성은? 점성은? 사진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은 용액을 담고 있는 탱크의 뚜껑이 튼튼하게 생긴 것으로 보아 압력이 상당히 높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탱크에서 나오는 파이프들에 단열재가 감겨 있는 것으로 보아 탱크 안의 용액은 온도가 높고 그 열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학공장에는 연금술사의 실험실을 연상케 하는 수수께끼의 설비들이 가득하다.
예전에는 부산항으로 목재가 많이 수입됐었다. 조춘만의 사진에도 야적장에 목재가 쌓여 있는 모습이 있으나 부산은 예전 같이 합판생산이 활발하지는 않다. 합판공업은 1968~79년까지 부산의 수출주종산업이었으나 동명목재 등 합판공장들이 도산 또는 폐쇄되어 사양화되었다. 이후 새롭게 부산의 기계공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자동차 부품산업으로서 2012년말 177,459대의 자동차가 생산됐고 매출금액이 3조 7,000억원에 달했다. 부품사업체수는 171개 업체에 종사자수는 9,962명으로 출하액이 2조9580억원에 달했다.” (출처: <부산의 역사> 중 공업편 https://www.busan.go.kr/bhmohistory14) 부산은 자동차 부품만 아니라 선박부품도 활발히 생산하고 있다. 대형 선박에 들어가는 엔진축이나 방향타를 지지해주는 러더 스탁(rudder stock)은 16미터가 넘는 길이에 무게도 최대 160톤까지 나가 강철재료를 대규모로 가공하면서도 고정밀도를 지킬 수 있는 공업력을 필요로 한다. 온갖 거대한 강철제품의 재료가 되는 강철 잉곳에서부터 다양한 샤프트를 생산하는 곳으로 태웅철강이 있다. 1981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부산을 대표하는 철강기업이며 세계 최대의 단조가공 기업이다. 단조(forging)란 강한 압력을 가진 프레스로 빨갛게 달아오른 철강소재를 누르고 두드려서 제품을 만드는 공법을 말한다. 강철제품의 원료가 될 잉곳을 녹여내는 거대한 솥인 래들(ladle) (IK187444_화전동) (IK187560_화전동), 6각형의 잉곳을 찍어내는 틀 (IK197729_화전동) 등, 하나 같이 독특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물건으로 가득하다. 15,000톤 단조프레스와 8,000톤 단조프레스가 엄청난 압력으로 강재를 내리눌러서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장면도 매우 인상적이다. (IK197796_송정동) 15,000톤 단조프레스는 최대중량 150톤, 최대직경 6m, 최대길이 20m의 철강재료를 다뤄 다양한 제품들을 만들고 있다. 규모와 섬세함, 정밀도의 마술이라 할 수 있는 이들 프레스들은 원자력발전 및 석유화학플랜트용 대형 쉘, 풍력발전용 대형 메인 샤프트, 선박용 대형 프로펠러 샤프트, 산업기계용 대형 샤프트 등 상상을 초월하는 설비들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조춘만의 사진에는 그런 능력들의 치열함, 강도, 열기가 잘 나타나 있다.
상호기계적 풍경
완전치는 않지만 조춘만의 작업은 사진으로 된 부산 산업의 목록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독일인의 다양한 얼굴들을 기록하겠다는 아우구스트 잔더의 사진과도 비슷한 목적을 지닌다. 이제껏 한국에서 한 도시의 산업 생태계를 망라하여 찍은 사진가는 없었다. 외국에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사실 도시의 산업 생태계에 대한 정보는 그 도시의 상공회의소 홈페이지에 가면 온갖 통계자료로 자세히 볼 수 있다. 조춘만이 하고자 했던 것은 산업 생태계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제품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생산되는가, 생산의 설비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 그것들은 어떤 구조를 하고 있는가, 설비들과 원료의 질감은 어떤 것인가 등이 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조춘만의 사진은 그런 종합적인 연결까지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는 눈앞의 대상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래서 각각의 사진은 산업이라는 거대한 퍼즐의 조각들이라 할 수 있다. 그 조각들은 하나의 생물 표본이 한 종(種)을 대표하듯이 하나의 산업을 대표한다. 어떻게 하면 퍼즐들이 맞춰진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그것은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고 하나의 개념적 장치를 필요로 한다. 조춘만의 사진에 등장하는 산업의 디테일은 이 장치를 링크로 하여 서로 연결된다.
그 링크란 상호기계성의 개념이다. 필자가 인문학에서 말하는 상호주체성(intersubjectivity)을 변형하여 만든 ‘상호기계성’이란 말은 기계가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고 반드시 다른 기계와 연결이나 접합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영준 『기계산책자』 이음, 2012) 연결, 접합은 모든 기계의 공통된 속성이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던 시절 사람 몸은 마음대로 연결하거나 접합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자유롭게 가능하다. 사람 몸도 기계가 됐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도로 시스템의 일부이며 강철산업과 연결돼 있고 석유화학산업과 연결돼 있으며 인체공학과도 연결된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산업이란 기계들이 상호기계성이라는 먹이사슬로 얽혀 있는 하나의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조춘만의 울산 사진에서는 그런 얽힘을 볼 수는 없었다. 공장들 하나하나가 큰 덩어리로 우뚝 서 있는 기념비 같아서 다른 기계들과 얽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석유화학공장 같은 경우 한 장면 속에서 수 많은 파이프들이 얽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의 시선에는 그 파이프들이 무엇 하는 것들이고 다른 파이프들과 무슨 원리로 얽혀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은 한 덩어리의 거대한 기념비 내지는 건축물로 보인다. 공장설비의 건축성을 강조하는 조춘만의 사진 스타일도 그런 것들의 기념비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형성돼 있었다. 반면 부산의 공장 안에 있는 기계들은 기념비가 아니라 산업생태계라는 큰 회로의 일부이다. 조춘만은 그 산업의 숲에 사진가로는 첫발을 디디고 일부를 봤다. 앞으로 그가 봐야 할 산업의 숲은 훨씬 넓고 조밀하다.
부산에는 그런 숲들이 아주 많다. 그것들에는 각각의 산업단지의 이름이 붙어 있다. 신평·장림 일반산업단지, 부산과학 일반산업단지, 센텀시티일반산업단지, 정관 일반산업단지, 기룡 일반산업단지, 반룡 일반산업단지,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 일반산업단지, 강서해성 일반산업단지, 명서 일반산업단지 등 외지사람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총 43개의 산업단지가 있다. 사진가는 나무도 봐야 하고 숲도 봐야 한다. 조춘만은 오늘도 부지런히 카메라 렌즈의 초점링을 돌리며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궁리하고 있다. 몇 년이 더 지나면 부산 산업의 숲과 나무는 조춘만의 카메라 앞에 전모를 드러낼 것이다. 그러면 부산은 울산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 산업의 숲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기계비평 이영준